《“고대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그 중요성을 널리 인정받는 고고학은 발굴자의 삽 아래 모습을 드러내는 표면적인 증거, 즉 발굴보다 훨씬 많은 것을 포괄한다. 발굴에 이어 그보다 훨씬 중요한 과정인 해석 작업이 뒤따르는 것이다. 해석을 하는 과정에서 문명만이 해낼 수 있는 과거의 재창조가 이루어진다. 고고학을 19세기의 주류과학 대열에 올려놓았던 것이 바로 이 재창조 작업이다. …‘삽을 든 남자’의 모습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사진으로 읽는 발굴 이야기
독일 출신으로 신문기자이자 연극비평가, 출판인으로 활동했던 저자가 책 프롤로그에 쓴 말이다. 이 책을 간단히 요약하면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 역사 이야기’다.
이 책은 이 삽을 든 남자들이 긴 시간의 강을 거슬러 가면서 어떻게 유물을 발굴하고 재해석하면서 고고학을 발전시켰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총 320여 점의 삽화와 사진이 중심이 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이들의 꿈과 도전 등 개인 역정, 당시 발굴과정을 둘러싼 에피소드, 유물에 얽힌 인문학적 정보가 어우러져 단순히 사진 위주의 책이라는 평가를 넘어선다.
“앙증맞은 귀, 우아한 이마, 짙은 눈썹,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꺼풀 밑으로 흰자위가 보이는 특이한 생김새의 눈이 인상적이었네. …허벅지와 다리의 곡선도 어찌나 근사한지.”
1485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의 인문주의자로 잘 알려진 로렌초 메디치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그해 4월 이탈리아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서 인부들이 석관 하나를 발굴했다. 관 안에는 고대 로마의 젊은 여성 미라가 안치돼 있었다. 2만여 명이 기적으로 여겨진 이 시신을 보기 위해 다녀가자 당시 교황은 한적한 장소에 묻으라고 명령한다. 메디치의 편지는 “석관에는 아무 표시가 없네. 때문에 아가씨의 이름도, 출신도, 나이도…. 알 수가 없네”라는 아쉬움으로 끝을 맺었다.
저자는 이 같은 호기심과 상상력, 열정이 고고학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고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요아힘 빙켈만, 전설로 여겨지던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 크레타 문명을 유럽인에게 알린 아서 에번스, 로제타석의 상형문자를 해독한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 바빌론 유적을 발굴한 로베르트 콜데바이….
삽을 든 고고학자 중에는 드물지만 여성도 있었다. 슐리만은 부인이 고고학 답사에 동행을 거부하자 그리스 여성과 두 번째 결혼 계획을 세운다. 그는 오직 그리스 여성하고만 행복할 것 같다며 아테네 여성 몇 명의 초상화를 받았다. 그런 뒤 ‘아름답고, 임신이 가능하고, 고대 그리스어와 문학에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맞춰 소피아와 결혼했다. 실제 소피아는 슐리만의 기대대로 조력자 역할을 했고 아가멤논과 안드로마케 등 두 아이를 낳았다. 20세기 들어 미국 헤티 골드먼, 터키 할렛 참벨, 테레사 고엘 등이 고고학사에 족적을 남긴다.
저자는 고고학의 역사가 선의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1800년대 초반 이집트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조반니 바티스타 벨초니는 서커스단 배우 출신으로 ‘유물 사냥꾼’에 가까웠다. 그는 람세스 2세의 조각상 일부를 나일 강으로 옮긴 뒤 다시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이동시킨 인물이다. 특히 마야, 아스텍 등 중앙아메리카에서 고고학은 정복으로 시작해 정복으로 끝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고학자들은 삽 대신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등 다양한 무기를 갖게 됐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상상력은 시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역사가 테오도어 몸젠)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