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중고장터 사이트에서 ‘풀박’으로 검색한 결과.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한 중고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중고 거래를 염두에 두고 새로 산 물건을 '고이 모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요즘 제품은 고장이 나서 버리는 경우보다 싫증이 나서 바꾸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중고 가격을 높게 받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는 것.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풀박'(Full Box의 약자) 유지다. '풀박'이란 구입 당시 포장지와, 설명서 이어폰 등 각종 부속품이 모두 있다는 뜻의 은어.
회사원 구 모 씨(28)는 40여만 원을 주고 구입해 1년가량 사용해온 터치형 휴대전화를 20만원에 팔았다.
그는 1년 전 제품을 구입한 뒤 포장지를 뜯으면서 흠집이 생기지 않게 보호 테이프를 얌전히 뜯어 두었다. 잘 쓰지 않는 이어폰과 추가 배터리 등 이른바 '구성품'은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채 포장지 안에 넣어 두었다. 제품 설명서 역시 펼쳐보지 않고 새 것처럼 보관했다.
그리고 최근 인터넷 중고 장터에 'OO폰 정상 해지, 풀박'이라는 제목으로 글과 사진을 올려 하루 만에 제품을 판 뒤 그 돈은 새 제품을 사는데 보탰다.
구씨는 "같은 중고 제품이라도 박스와 설명서, 구성품 등이 모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값이 20~ 30%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제품을 '고이 모셔' 신상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인 신조어 '신동품(新同品)'도 등장했다.
회사원 김 모 씨(27·여)는 최근 무선 인터넷 기능이 있는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PMP)를 30여만원에 구입한 뒤 제품 전체를 보호 필름으로 감쌌다. 박스와 구성품, 설명서 보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최근 회사에서 선물로 용량이 더 큰 제품이 나오자 5개월 여간 사용해온 기존 제품을 20만원에 팔았다. 사용하던 제품의 보호 필름을 뜯어낸 뒤 중고 장터에 '신동품, A급'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을 찍어 올려 어렵지 않게 구매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제품 사용기간이 제법 됐지만, 외관상 아무런 흠집이 없고 풀박에 구성품을 모두 갖추고 있어 구매자도 만족해했다"고 말했다.
3년마다 차를 새로 구입하는 직장인 조 모 씨(40)는 주위에서 "절대로 튜닝을 하지 않고 지정 정비업소만 이용하는 운전자"로 유명하다.
조씨는 "차의 외형이나 엔진 등의 구조를 바꾸거나 액세서리를 부착하면 중고차 시장에서 제 값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업체 지정 정비업소만 이용하는 이유는 "정비 기록이 빠짐없이 남아 있어야 중고차를 구입하는 상대방이 신뢰를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렇게 해서 3년에 한번씩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차를 바꾸고 있다. 최근에도 3년 전에 2300만원을 주고 산 차량을 중고 장터를 통해 1600만원에 팔고 돈을 보태 새 차로 바꿨다.
중고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관련 서비스도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장터 옥션에 따르면 이 회사 중고장터 서비스(used.auction.co.kr) 거래액은 매년 300% 이상 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78%, 5월에는 343%, 6월에는 330%씩 증가했다.
옥션의 서민석 부장은 "알뜰하게 신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과 값은 싸지만 새 제품과 다름없는 깨끗한 중고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관련 서비스 매출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