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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 25시]대화기술 필요한 ‘나쁜 소식 전하기’

입력 | 2009-06-29 02:59:00


김윤기 씨(51·경북 문경시)는 2007년 외아들 진현 씨(당시 23세)를 잃었다. 어이없게도 치질 수술과 관련해서였다. 진현 씨는 경기 부천시의 부천대성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회복실로 옮기는 도중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오후 8시경 부천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밤 12시가 넘어 중증 저산소증에 따른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김 씨는 “치질 수술로 사람이 죽는 게 말이 되느냐”며 집도의와 마취의를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올 초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아 환자가 사망했다”며 집도의에게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마취의에게 금고 8개월을 선고했다. 집도의는 판결을 받아들여 항소를 포기했지만 마취의는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년 넘게 소송을 하고 있는 김 씨는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이 마취의의 안하무인의 태도와 말 바꾸기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말이 안 통했습니다. 내가 한 마디 하면 스무 마디 하더군요. 법원에 제출한 진료기록도 의심스럽습니다.”

의료사고를 경험한 환자 가족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사고 원인에 대한 병원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병원 측의 무성의한 태도, 의사 측의 불손한 태도도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이는 전형적인 ‘관계 맺기’의 실패다. 류화신 충북대 법대 교수는 “대부분의 의료분쟁은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깨지는 데서 비롯된다”며 “의사가 환자와 대화를 피하거나 일방적으로 대화를 강행할 경우 감정대립 때문에 소송으로 가기 쉽다”고 말한다.

의료진에게 극도로 흥분된 상태의 환자 가족을 앞에 두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눈을 부릅뜨고 ‘적(敵)’을 찾는 가족 앞에 이성은 무너지기 쉽다.

그래도 의료진은 가족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의료진의 잘못이라고,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도 알 수 없는 사고가 많고, 잘못인지 여부는 2차적으로 따져야 할 문제다. 의료진은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현아 이화여대 교수는 “어떤 위험이 있는 수술이었는지, 우려했던 문제 중 무엇이 발생했고 의료진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사고 후에는 의료진과 환자 가족이 충분한 대화로 서로 간 오해를 좁히고 해결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아쉽게도 국내 의사들 중에는 ‘나쁜 소식 전하기’를 위한 대화의 기술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수술과 진단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 환자와 신뢰관계 형성을 위한 대화에는 너무 무심한 것이 아닌지 뒤돌아봐야 한다.

‘나쁜 소식 전하기’는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죽음을 앞에 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과정은 갈등을 해소하는 데 꼭 필요하다. 의료소송이 날로 증가하는 지금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