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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與도 野도 ‘서민’을 희롱하지 말라

입력 | 2009-06-29 02:59:00


여야 정치권이 새삼스럽게 ‘서민(庶民)정치’ 경쟁에 돌입한 느낌이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건 ‘강부자 정권’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자신들만이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선전한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야당과 좌파세력의 이런 공세에 더는 시달릴 수 없다는 듯이 서민 껴안기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시장에 찾아가 상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떡볶이도 먹었다. 그러자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대통령이 떡볶이 집에 가면 그 집에 손님 안 온다”고 비꼬아 여야(與野) 간 설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여당이건, 야당이건 서민을 정치공방의 소재로 삼을 뿐, 일자리를 잃거나 가게 문을 닫고 벼랑 끝에 선 그들의 처절한 현실을 함께 고통스러워하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주려는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얄팍한 립 서비스로 서민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권의 가벼움이 역겹다. 진실로 서민을 위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깊이 천착하지 않은 채 계층 갈등을 부추기는 포퓰리즘 정치로 치달으면 결국 서민의 삶만 멍든다.

지난날 노무현 정권은 걸핏하면 ‘서민’을 앞세웠던 자칭 ‘서민 정부’였다. 이들은 ‘20 대 80’ 운운하며 20%의 부자를 때려 80%의 서민을 살리겠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서민의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빈부격차가 오히려 커졌다. “2%의 부자를 정밀 타격해 98%의 국민을 즐겁게 하겠다”며 징벌적 부동산 세제(稅制)를 잇달아 도입했지만 서민의 삶은 더 힘들어졌고 집값과 땅값을 끌어올려 위화감만 키웠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기업 일자리가 줄면서 ‘떠밀려 가게를 차리는’ 자영업자가 나날이 늘었으나 제대로 벌이가 되는 곳은 많지 않다. 자영업에 초점을 맞춘 서민대책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도 거기에 있다. 진정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생각한다면 ‘기업형 일자리’를 늘려 ‘경제의 선(善)순환적 침투효과’가 사회 곳곳에 퍼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말처럼 서민의 삶을 걱정하는 정당이라면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제도적 사회적 환경을 정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제조업의 고용효과가 과거처럼 크지 않음을 감안할 때 금융 미디어 정보통신 교육 의료 등 각종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새로운 산업기반을 확충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내수시장을 살리는 길이기도 한데, 이를 통해 중산층을 육성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민주당은 금융 미디어산업 등 우리 경제의 질적 도약을 가능케 하는 서비스산업 개혁을 ‘재벌을 위한 악법(惡法)’으로 몰아세우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있다. 방송이나 노동 기득권 세력의 폐해를 바로잡기는커녕 그들과 손잡고 걸핏하면 장외투쟁으로 사회 불안을 키움으로써 자영업자 등 서민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든다. 10년간 집권하면서 신(新)기득권을 누린 이들이 서민 운운할 도덕적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서민경제’를 외쳤던 과거 정권주체 및 가족들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지금은 무슨 돈으로 어떻게 사는지, 그런 축재(蓄財)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밝혀진 적은 없다.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은 이른바 ‘서민 행보’라는 이벤트만으로는 서민의 삶을 본질적으로 개선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서민 내 편 만들기’ 연극이나 해서 궁극적으로 바뀔 일은 별로 없다. 서민의 한숨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는 경제의 패러다임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정부는 이를 위한 설계를 국민 앞에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며, 그 방향과 구체적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많은 서민을 비롯한 국민도 경제의 거대한 선순환 없이 서민의 삶이 윤택해지지 않을 것임을 냉철하게 꿰뚫어봐야 한다. 정치권의 달콤한 말에 솔깃할 것이 아니라, 투자를 촉진하고 일자리를 늘리며 국부(國富)를 더 키울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속속 만들어내라고 한목소리로 요구해야 한다. 서민을 위한다는 구호가 자칫 반(反)기업 정서와 결합하고 경쟁을 죄악시하는 풍조로 이어지면 우리 경제와 사회를 악순환의 수렁으로 빠뜨릴 위험성이 있다. 국민은 ‘총체적 빈곤화의 길’을 부추기는 선동성 구호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교육정책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전만 해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도 머리가 좋고 노력만 하면 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평등 교육’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세력이 정권과 교육계를 장악한 지난 10년간 서민층이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이룰 기회는 점점 더 사라졌다. 평준화 교육이라는 허울 아래 공교육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공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과 비도시지역 학생들은 ‘평준화의 희생자 집단’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