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윤영하함이 서해 앞바다에서 전술기동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이날 훈련에 앞서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는 제1연평해전 10주년 기념식이 해군본부 주최로 열렸다. 국내 첫 최첨단 유도탄고속함(PKG)인 윤영하함은 2002년 제2연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땄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제2연평해전 당시 합참 군사정보부장이 털어놓은 비화
감청부대서 특수정보 포착 도발징후 분석중 공격받아
기습당한 아군 신속 대응…北, 예상밖 큰 피해에 당혹
장병들 최악상황서 잘 싸워…승전영웅으로 재조명 되길
北 3차도발 가능성 높아, 軍 강력대응 경고 당연
《28일 낮 서울 시내 한 호텔 커피숍. 권영달 예비역 소장(59·육사 28기·사진)은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제2연평해전은 절대 ‘패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장병들의 희생과 전공(戰功)이 재조명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당시 합참 군사정보부장이었던 그는 차분한 어조로,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군 당국이 파악했던 각종 대북 첩보를 근거로 북한군의 구체적인 피해 내용과 상황을 공개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그는 합참 군사정보부장이었다. 작전에 필요한 대북군사정보를 군 당국에 제공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는 “합참의 정보융합실장은 일일, 주간 및 월간 단위로, 군사정보부장은 분기 이상의 중장기적인 북한군 위협 평가와 정보 판단을 했다”며 “두 직위는 북한의 군사 동향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그는 제2연평해전 전후의 북한군 관련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북한 경비정은 도발 며칠 전부터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고 그는 전했다. 이 때문에 징후 단계를 격상했고 작전 관련 부서에도 통보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관련 첩보로 볼 때 북한군이 도발해올 징후를 심층 분석하던 중 기습공격을 받은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군의 정확한 피해 내용과 상황이 잘 알려지지 않아 지금도 일각에서 제2연평해전 때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보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교전 이후 모든 경로를 통해 파악된 대북 첩보에 따르면 우리 장병들이 북의 기습을 받고도 사력을 다해 응전해 큰 피해를 안겨줬음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7년 전으로 돌아간 그는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을 이었다. “교전 이후 북한 기지로 복귀한 북한 경비정은 우리 장병들의 집중 포격으로 함교(조타실이 있는 선체 중앙 부분)가 완전히 날아가고 선체 후미의 37mm 함포도 형체 없이 파괴됐음이 확인됐습니다.” 그는 이어 “북한 경비정에 타고 있던 50여 명 가운데 사망 13명을 포함해 3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고 상부에 보고했다”며 “특히 사망자들은 대부분 갑판 위에 있다가 아군 포격을 받아 현장에서 죽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교전 직후 북한 경비정이 황해도 사곶기지로 복귀하는 동안 북한군은 여러 경로로 위급 상황을 전파하면서 사상자 등 피해 상황을 파악하느라 매우 어수선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군은 선제공격을 하고도 사실상 패배했으며 이후 북한군은 한국 해군과 정면충돌을 꺼리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북한군의 피해 내용과 상황은 왜 부각되지 않았을까. 그는 “아군 고속정을 침몰시킨 북한 경비정을 격침하지 못했고 선제공격을 당한 점을 계속 추궁 당해 군이 위축된 탓도 컸다”고 답했다.
그는 또 “당시 북한경비정은 침몰할 것으로 봤지만 다른 함정에 견인돼 간신히 기지로 복귀했다”며 “그때 북한경비정이 바닷속에 가라앉았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교전 다음 날인 2002년 6월 30일 열린 한미 군정보당국 평가회의 때 대북감청부대가 도발 이틀 전인 27일 포착한 다수의 특수정보(SI)가 치밀히 계획된 도발임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됐다고 말했다. “SI의 세부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북한군이 27일부터 NLL 도발 태세에 돌입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였습니다. 이후 우발적이냐 의도적이냐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됐죠.” 제2연평해전을 누가 주도했느냐에 대한 그의 분석은 이어졌다. “교전 전후 상황으로 보면 김정일이 ‘한방 먹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진 않았을 겁니다. 과거부터 북한군 내에 1999년 제1연평해전을 앙갚음하자는 분위기가 있었고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북한 서해함대사령부와 예하 8전대가 결정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는 북한이 또다시 서해도발을 일으킬 여지가 충분하다고 우려했다. 과거처럼 NLL 일대에서 해안포를 쏜 전례를 답습하거나 사거리가 더 긴 대함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군이 북한의 도발 때 강력 대응하겠다고 경고한 것은 당연하며, 그런 경고는 적의 오판을 억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제2연평해전 7주년을 맞는 소감을 물었다. 그는 “이맘때면 우리 장병들이 NLL을 사수한 결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잊혀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놨다. “제2연평해전은 확실한 승전이었고, 우리 장병들은 진정한 영웅이었음을 국민들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반드시….”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