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논쟁이 한창이다. 인플레이션에 무게를 싣는 쪽은 과거 어느 때도 이번처럼 동시다발적이고 강력한 통화 공급은 없었다고 말한다. 풀린 돈만큼 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상식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작금의 유가상승과 실물자원, 곡물 가격 상승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방향은 비슷하게 본다. 하이퍼(초)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은 부인하지만, 지나친 유동성 공급과 재정적자가 국채금리 상승과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이른바 ‘출구전략’이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장은 이런 딜레마를 명료하게 반영한다. 무서울 만치 시장은 냉정하다. 미국채 수익률이 급등했고 한국 역시 국고채 금리가 급상승했다. 회사채 수익률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몫’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 풀린 돈의 양으로 볼 때 최소한 5∼6% 이상의 수익은 시장에 할당하라는 뜻이다. 시장은 뱀의 혀처럼 이런 불균형을 감지한다. 그래서 시장은 자기 몫을 나누자고 요구하는 것이고, 중앙은행이 제 아무리 기준금리를 동결하려고 해도 채권가격 하락은 계속될 것이다. 경기회복이나 물가수준과는 무관하게 최소한 ‘금리상승’은 대세라는 뜻이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국면의 지속을 예측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사실은 아직은 디플레이션 전망이 대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막대한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은 아직 역사적 평균보다도 낮고, 경기 회복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수요 감소로 인한 물가하락이 더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의 유가급등이나, 실물가격 상승은 주식시장의 반등과 마찬가지로 기대심리가 만들어 낸 시장의 왜곡현상일 뿐 아직 물가상승을 논하기는 이르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풀린 돈이 시중에 흘러들어간 것이 아니라, 은행 시스템에 잠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직 돈은 저수지에 고여 있고 농로에는 물이 말라 있으므로 모종이 썩을 염려는 기우라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들은 더욱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을 펼 것을 주문한다. 이들은 국가 재정과 경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긴축론자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런 의견은 주로 재계와 월가 쪽에서 나온다.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이다.
문제는 판단이다. 한쪽은 인플레이션 혹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디플레이션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예사 국면이 아니라는 뜻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강약의 정도가 아니라 방향성 자체가 대립하는 것은 정책당국이 맥을 잘못 짚을 경우 심각한 결과가 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악의 경우 둘 중 어느 한쪽이 아니고 둘이 결합하는 결과, 즉 ‘수요 감소로 인한 경기하강과 유동성 과잉으로 인한 물가상승’이 맞물릴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괴물이 안개 속에서 출현할 개연성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경철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