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부터 25일까지 중동 지역의 건설현장 취재를 위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와 아부다비, 카타르의 도하 등을 방문하면서 중동 국가들의 외국인 입국심사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공항 입국심사 과정에서 방문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인사를 건네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 출입국 담당 공무원들의 모습은 약과였다. 도하 국제공항에서는 입국심사를 모두 마치고 입국장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보안요원이 나타나 길을 막으며 “왜 카타르에 왔느냐”고 캐묻는 일도 있었다. 중동의 변방도 아니고 대표적인 국제도시 중 하나인 도하에서 이런 경험을 한다는 사실이 기자로서는 놀라웠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웠던 경험은 퉁명스럽게 방문 목적을 묻는 이 보안요원에게 “현다이 엔지니어링 앤드 컨스트럭션(현대건설)의 건설현장을 보러 왔다”고 답하자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 점이었다. 이 요원은 “오, 현다이∼. 오케이”라고 하며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 심지어 무표정했던 얼굴에 살짝 미소까지 지었다.
아부다비 국제공항의 입국심사에서도 분위기를 바꾼 단어는 ‘현다이’였다. 공무원은 “무슨 일로 왔느냐”며 얼굴도 보지 않은 채 무뚝뚝하게 물었지만 도하공항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대답을 하자 곧바로 여권에 스탬프를 힘있게 찍어 건넸다.
현대건설의 공사현장을 취재하면서 왜 ‘현다이’가 딱딱한 입국심사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꾼 패스워드인지 알 수 있었다. 천연가스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첨단 시설과 마실 물을 공급해 주는 대형 담수화 시설 등 현지인들의 뇌리에 오래 남을 만한 공사들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다른 나라 건설사들보다 훨씬 빠르게 공사를 진행해 발주처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우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 GS건설 등 다른 국내 건설사들도 중동 지역의 각종 대형 플랜트와 담수화 시설, 유명 건축물, 도로, 항만시설 등을 만들며 현지인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고, 그 여파로 상당수 건설업체들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건설업계는 부실경영의 상징처럼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건설사들은 열사(熱砂)의 나라 중동에서 이름만 대면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바뀔 만큼 영향력 있는 공사를 담당하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중동의 산유국 경제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국 건설사들이 플랜트 수출의 첨병이자 대한민국의 민간홍보사절로서 중동의 마음을 계속 사로잡기를 기대한다.
이세형 경제부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