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이적’ 옵션 거부해 놓고 ‘사전협정’ 문구는 삽입
자신을 위해 끊임없는 거짓말을 하면서 한국 축구계의 명예를 실추시킨 이천수(28). 그렇다면 원 소속팀인 페예노르트(네덜란드)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일까.
먼저 페예노르트와 이천수가 임대됐던 전남 구단이 주고받은 공문의 시점과 내용을 살펴보자. 지난 달 22일 밤 페예노르트는 전남에 “이천수의 이적 협상이 잘 진척되고 있으니 선수를 보내달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고, 24일 밤에는 “사우디 리그 알 나스르와 이적 건이 합의됐으니 7월 1일까지 이천수를 보낼 것”이라고 요구했다. 또 하루 뒤인 25일에는 “만일 7월 1일까지 선수를 보내지 않을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과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이적동의서를 발급받는 절차를 밟겠다”고 전남을 압박했다.
그런데 페예노르트가 보낸 두 번째 공문에는 ‘이천수가 전남에 임대되기 전, 우리 팀(페예노르트)과 사전 협정을 맺었다(Make Arrangement prior)’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 이는 이천수가 네덜란드 현지에서 자신의 일을 도와주던 통역을 통해 페예노르트에 자신의 수월한 이적을 위해 ‘강제 이적조항’ 옵션이 삽입된 공문을 전남에 보내달라고 부탁했던 시점과 맞물린다.
바로 이 점이 미심쩍은 부분이다. 페예노르트가 공문서 위조를 우려, 분명히 이천수의 요청을 거부했으면서도 ‘사전 협정’ 문구가 삽입된 공문을 보냈다는 것은 전남을 압박하는 것은 물론, 페예노르트가 소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는 전남에도 결코 예의가 아니다. 더구나 이천수가 “‘페예노르트 입단 당시 받았던 연봉 혹은 그 이상을 제시하는 구단이 나타날 경우, 이적 거부를 행사할 수 없다’는 조항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자신의 거짓말을 털어놓았기 때문에 페예노르트의 진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전 협정’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페예노르트는 아직까지 이 협정에 대해 납득할 만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에이전트는 “‘우리(페예노르트)의 뜻에 선수가 따라야 한다’는 강제 조항을 이천수 측이 원했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선수 보호가 우선시되는 FIFA 규정을 잘 알고 있는 페예노르트가 선수를 빼내기 위해 해석이 어려운 ‘사전 협정’ 문구를 삽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이적할 팀을 찾았을 때 이천수가 동의하겠느냐’ 정도로 바라보는 게 가장 무난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위약금(3억7500만원)문제로 이천수와 다투고 있는 이천수의 전 에이전트 김민재 IFA 대표는 2일 스포츠동아와 전화통화에서 “최초 협상 대리인 자격으로 ‘협정’문구 해석과 관련한 견해를 요청하는 내용의 팩스를 지난 월요일(6월29일) 페예노르트에 보냈지만 아직 대답이 없다. 팀 관계자들과 통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페예노르트는 1일 프로축구연맹 직원과 통화에서 “이천수에 내려진 ‘K리그 로컬룰(임의탈퇴)’를 이해할 수 없다. FIFA 제소도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국제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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