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살고 싶은 집 브랜드 하나를 꼽으면?
국내 주택 트렌드를 이끄는 한국의 아파트 대표 브랜드.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건설)의 ‘래미안’에 대한 평가다. 2000년 모습을 드러낸 래미안은 국내 아파트의 브랜드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자부심(pride)’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내포한 래미안은 국내 주택시장의 흐름을 한발 앞서 내다보며 의제를 설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최고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주택시장의 선두권에서 뒤처진 적이 없다.
○ 아파트 브랜드화 개척
아파트에 브랜드 개념이 없던 국내에서 래미안은 ‘브랜드 개국공신’에 해당한다. 어느 아파트 브랜드가 최초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래미안이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한발 앞서 주택 트렌드를 제시함으로써 아파트 브랜드화의 불을 지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반론이 별로 없다.
래미안이 주거문화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창구는 ‘래미안 스타일 발표회’다. 이 자리에서 지향하는 주택 개념과 새 기술, 디자인 등을 내놓는다. 개최 첫 해인 2004년에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건강한 주택의 기준인 ‘주거 성능주의’를 발표했다. 주택에 웰빙이라는 개념을 접목해 당시 불기 시작한 참살이 열풍을 반영한 것.
2005년에는 유비쿼터스 기술을 주택에 도입한 ‘래미안 U플랜’으로 첨단 아파트를 제시했다. 이때 선보인 유비쿼터스 아파트는 큰 화제가 됐다. 상당수 사람들은 첨단 기술과 집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래미안은 의자에 앉으면 생체리듬에 맞는 음악이 나오거나 인터넷TV(IPTV)와 유사한 TV 등을 선보이며 정보기술(IT)이 주거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지난해에는 친환경과 에너지 효율을 강조한 ‘e큐빅’을 발표했다.
커뮤니티 시설 확대도 래미안이 던진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아파트를 거주만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울리는 공동체’로 해석한 것이다. 래미안이 제시한 키워드를 다른 아파트 브랜드들도 속속 수용하면서 래미안은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최고의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세워나갔다. 제일기획 박재항 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은 “래미안은 최초의 아파트 브랜드라는 자부심과 함께 시대적 특성에 맞춰 구체적인 모습을 꾸준히 제시함으로써 한국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실제 래미안은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아파트 중 하나로 꼽힌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가 전국의 성인 1041명을 대상으로 아파트 브랜드에 대한 의견을 조사해 올해 1월 발표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파트 브랜드’에서 래미안이라고 답한 비율이 39.4%로 가장 많았다. 수도권, 대구·경북, 대전·충남북에서는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로 꼽혔다. 부동산114 김규정 부장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브랜드 조사에서 래미안은 선호도, 인지도와 함께 세련미, 신뢰감 등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 톱모델 내세우지 않는 홍보전략
래미안은 광고에서 톱모델을 고정적으로 쓰지 않는 편이다. 과거 황수정, 이병헌, 장서희를 모델로 선택했지만 계약기간이 길지 않았다. 최근 3년간은 아예 톱모델 없이 광고를 만들었다. 요즘 들어 톱모델 없이 광고하는 아파트 브랜드가 늘고는 있지만 건설업계에서 톱모델을 사용하는 전략이 일반화한 것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인 일이다. 일각에서는 적합한 톱모델을 찾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디자인-상품개발-마케팅 3박자 협업… 주택=문화 트렌드 이끌어
그러나 선두 브랜드로서의 자신감이 반영된 현상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삼성건설 김동욱 래미안 브랜드팀장은 “오랜 기간 특정 모델을 기용하면 모델 이미지로 브랜드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모델이 변하고 브랜드가 끌려가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래미안은 특정 모델의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색깔을 정확하게 전달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최근에는 아빠와 딸, 집들이하는 가족, 결혼을 앞둔 연인 등을 등장시켜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 아파트는 공간과 문화가 있는 곳
래미안이 선두 브랜드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한 데는 발상의 전환이 주효했다. 아파트를 단순한 공동주택이 아니라, 방 거실 벽 등으로 이뤄진 하드웨어와 주거문화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상품으로 보았다.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의 수준을 높이는 데도 신경을 썼다. 입주 뒤 하자보수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객들의 불편사항을 종합적으로 해결하는 ‘래미안 헤스티아(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가정을 지키는 화로의 여신 이름)’라는 서비스 브랜드를 별도로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이러한 발상에서 나왔다.
주택시장의 흐름을 분석해 꾸준히 새 트렌드를 제시한 것도 주거문화를 강화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다. 이를 위해 삼성건설은 상품개발실, 디자인실, 마케팅실이 서로 협업하는 체제를 갖췄다. 올해는 이 세 부서를 묶은 마케팅상품그룹을 만들어 시너지를 높이도록 했다. 이뿐만 아니라 전체 직원들이 ‘남들이 못한 것을 먼저, 그리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한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래미안은 내년에 브랜드 출범 10주년을 맞는다. 10년 전에는 브랜드를 만든 것 그 자체만으로도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다른 브랜드와 격차를 벌리고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과제로 꼽힌다. 박재항 소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래미안 아파트가 늘어나 브랜드가 점차 대중화되는 가운데 자부심 등과 같은 특별한 가치를 어떻게 유지할지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