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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택]장관과 총장

입력 | 2009-07-04 02:52:00


간담회(懇談會)를 한자의 뜻을 살려 풀이하면 ‘정답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정도가 될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정담회(情談會)’ 또는 ‘대화 모임’으로 순화하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장관이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간담회를 선호하는 편이다. 간담회라는 제목을 붙여놓으면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격의 없이 대화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늘어놓거나 언론 홍보용으로 마련한 자리인데도 간담회로 포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간담회보다 토론회를 즐겼다. 그가 해양수산부 장관일 때 부산 시민단체들이 해양부의 부산 이전에 관한 간담회를 요청했다. 간담회의 장단점과 언론의 생리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간담회 대신 TV 토론회를 하자고 역(逆)제의했다. 그는 “간담회를 할 경우 내 이야기는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해양부 이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장관을 불러서 이전을 촉구했다는 사실만 보도될 우려가 있었다”고 나중에 털어놨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라는 말로 유명한 ‘신(新)경영 선언’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8월 4일까지 영국과 일본을 오가며 삼성그룹 사장단과 임직원을 대상으로 ‘해외 간담회’를 계속했다. ‘신경영 대장정’으로 불리는 이 기간에 간담회는 사장단을 대상으로 800시간, 임직원 1800명을 대상으로 350시간이나 열렸다.

▷그제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대학 총장 165명의 간담회는 장관의 일방통행식 강의였다는 후문이다. 이 간담회는 안 장관이 “또 말씀드릴 게 있다”는 말을 반복하며 연설을 계속해 예정된 1시간이 다 지나가고 서울로 돌아갈 비행기 시간도 임박해지는 바람에 서둘러 총장 3명의 질문만 받고 끝났다. “장관이 쓴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혼자 얘기만 하는 게 무슨 간담회냐”는 뒷말이 나왔다. 안 장관이 국공립대 지원 확대 등을 밝힌 대목에서는 박수가 나오며 분위기가 괜찮았다고 한다.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지 않고서 진정한 대화나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대학 총장 165명이 결국 ‘장관 특강’을 듣기 위해 제주도에 집합한 모양새가 됐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