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때 복지재단보다는 장학재단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민간 차원의 장학재단은 전국적으로 2000개에 이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부를 시켜주는 것만큼 도움 되는 일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는 듯하다. 젊은 시절 배우지 못해 한이 맺혔던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산의 사회 기부 약속에 따라 설립하는 ‘재단법인 청계’도 장학사업 위주로 운영된다. 복지사업을 같이 벌인다고 되어 있으나 송정호 재단설립추진위원장은 ‘학생들의 식사비용 등을 지원하는 정도의 복지’라고 설명했다. 큰 틀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재단을 세우려는 청사진이다.
▷이 대통령은 그간의 소회를 담은 글에서 고학생 시절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가난한 분들이었다며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가 재산 기부를 결심한 것도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던 2007년 12월보다 훨씬 이전이라고 밝혔다. 1995년 발간한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는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대통령 역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보답의 의미에서 장학사업을 선택했다.
▷기부 약속을 지킨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청와대는 최고 지도자가 재임 중에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것은 세계 정치사에 유례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례는 더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 앞으로도 재산 많은 후보들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을 터이고 그들이 선거의 중요한 고비에서 재산의 사회 환원 카드를 스스로 내밀거나 혹은 떠밀리듯 내밀어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는 유능한 국가지도자를 뽑는 일이다. 오늘날 지도자의 능력은 재산의 많고 적음과 관련이 없다. 가난한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돈 많은 후보가 재산을 사회에 내놓았다고 해서 점수를 더 받을 이유가 없다.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이 재산을 기부하는 일이 또 있더라도 선거와 직접 연관을 짓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 되었으면 한다. 재산 기부는 순수한 마음에서 이뤄져야 전파력을 지닌다. 대통령 후보는 오로지 자질과 능력, 도덕성으로 평가받는 전통을 세워나가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