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독성학 연구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 과학도 사르마 씨(가운데)는 체계적인 연구 환경과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한국 과학에 매력을 느껴 아내(오른쪽)와 처남까지 데려와 함께 공부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한국 연구환경에 빠진 ‘外男外女’… “과학에도 국경 없지요”
“한국에서 연구할 수 있게 돼 정말 기뻐요. 혼자 누리기 아까워서 아내와 처남도 데려왔답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대사연구센터의 방글라데시 출신 과학도 사이렌드라 나드 사르마 씨(32)는 요즘 한국 과학에 푹 빠져 있다. 실험에 필요한 재료와 장비가 풍족하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를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겐 가장 큰 매력이다. 부모님 소개로 만나 사르마 씨와 결혼한 묵다 라니 데브나스 씨(28)도 “남편 덕분에 동생과 함께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며 만족한다.
국내 연구실에서 이들처럼 피부색이 다른 과학자를 이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엔 단순히 학위를 받으러 오는 유학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외국인 과학자가 뛰어난 연구 성과로 국내 학계에도 적잖이 기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 “한국 과학은 매우 체계적”
“방글라데시에서 박사과정 대학원생은 주로 책으로 이론만 공부해야 해요. 시약(試藥)이나 기기가 턱없이 부족해 실험을 거의 못하죠. 하지만 한국에선 웬만한 실험재료는 2, 3일 안에 바로 얻을 수 있어요.”
데브나스 씨도 남편의 얘기에 맞장구치며 “한국의 연구 환경은 정말 체계적이고 편리하다”고 말했다. 사르마 씨는 독성학, 데브나스 씨는 나노재료학 연구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전공은 다르지만 한국 과학계를 보는 시각은 비슷하다.
이런 환경 덕에 우수한 연구 실적을 낸 사르마 씨는 2007년 석사과정을 졸업할 때 ‘우수학생상’을 받았다. 그를 지도한 KIST 류재천 책임연구원은 “벌써 국제저널 논문 9편과 특허 4건을 발표한 우수한 인재”라며 “본인과 방글라데시의 장래를 위해 박사과정에 진학하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사르마 씨는 유해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대한 ‘바이오마커’를 찾는 연구를 한다. 바이오마커는 인체가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노출됐을 때 변화가 생기는 유전자 부위. 이를 찾아내면 국내 연구자들이 새집증후군 같은 증상의 예방이나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르마 씨는 고국에 한국의 과학교육을 알리는 다문화 전도사 역할도 자청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건설을 비롯한 한국 산업은 유명해요. 하지만 한국의 과학교육에 대해선 잘 모르죠. 일본이나 유럽 못지않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국의 친구들에게 계속 알려주고 있어요. 이 같은 교육이 양국의 다문화 정착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국내에 유용한 연구 성과 내기도
넬리 시아바바 아강간 박사(51)는 필리핀에서 인정받는 ‘공생균’ 전문가다. 필리핀대 국립 분자생물학 및 생명공학연구소에 몸담고 있던 아강간 박사에게 먼저 ‘러브콜’을 보낸 건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공학과의 한국 과학자들이었다.
이곳의 노은운 산림생명공학과장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개발하기 위해 현장에서 공생균을 직접 다뤄본 경험이 있는 아강간 박사를 초청했다”고 밝혔다.
곰팡이의 일종인 공생균은 뿌리에 달라붙어 식물이 영양분을 더 많이 빨아들이게 돕는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땅속 오염성분을 제거하는 유전자 변형 포플러를 개발해 강원도나 경북도의 폐광 지역에 심을 계획이다. 이 포플러가 독성이 심한 폐광 지역의 토양에서도 잘 자라려면 공생균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강간 박사는 “한국 땅에 사는 20여 가지의 공생균을 배양하면서 폐광 지역에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르는 중”이라며 “지난해부터 한국에서 한 공생균 연구를 학술대회나 국제저널에 5차례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개발한 공생균이 한국에서 유용하게 쓰이길 바라고, 필리핀에 돌아가서도 한국과 계속 공동연구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과학 외교사절 역할까지
이란 농림부 산하 코라산 농업 및 자연자원 연구센터의 자바드 타바타베이 야즈디 교수는 최근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약 3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심각한 물 부족을 겪고 있는 고국에 빗물저장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다.
야즈디 교수가 이 아이디어를 얻은 건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서울대 빗물연구센터에서 한무영 교수와 함께 일하면서였다. 깨끗한 빗물을 모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하면 가뭄에 대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식량 관련 산업도 창출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에 한국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중동지역으로 확장하는 데 발 벗고 나서기로 한 것.
야즈디 교수는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물 부족 문제의 효과적인 해결책을 한국 덕분에 얻었다”며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 과학자들의 진지한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회가 되면 다시 한국 과학계에 합류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해왔다.
외국인 연구자의 존재는 국내 과학계의 글로벌화, 건강한 다문화사회 정착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사르마 씨에게 실험을 배운 육다영 씨(고려대 생명과학부 학연산협동 석사과정)는 “처음엔 영어로 배운다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과학계는 어차피 영어논문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데 과학의 역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학비 지원 ‘국제 R&D 아카데미’
출입국 돕는 ‘사이언스 카드’
■ 외국인 과학자 돕는 지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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