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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요란하게 터뜨린 울분… ‘폭발음’은 약했다

입력 | 2009-07-09 03:00:00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표현주의 뮤지컬. 뮤지컬에도 사조가 있다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어울리는 사조는 표현주의일 것이다. 객관적 현실 묘사보다 주관적 감정 표출에 치중한 표현주의가 독일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도 없을 듯하다.

‘스프링…’은 19세기 말 독일의 청교도 학교를 무대로 한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이 원작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매력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기성세대에 맞선 10대의 반항이란 작품의 주제의식이 아니라 그 표현 방식에서 나온다.

15세밖에 안 된 주인공들은 아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궁금해하는 것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고 교사의 가르침을 벗어난 지식 탐구를 불온한 것으로 간주하는 기독교 원리주의의 수레바퀴 아래 짓눌려 하나둘 희생된다. 그들의 저항은 외부로 표출되지 않고 내면세계에서 소용돌이칠 뿐이다.

십대 내면의 소용돌이
온갖 형식파괴로 분출
노래 힘 모자라 아쉬워

이 작품은 그 내면의 소용돌이를 21세기적인 미국 대중문화의 문법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드러낸다. 19세기 수업을 받던 주인공에게 조명이 쏟아지면 윗도리 속주머니 속에 감춰뒀던 마이크를 꺼내거나 무대 밖 스탠드 마이크를 들고 와 내면의 감정과 욕설이 섞인 노래를 토해낸다. 표현주의 화가 뭉크의 ‘절규’가 따로 없다. 이들의 음악은 독일풍이 아니라 미국의 블루스와 록이다.

뮤지컬은 이런 주관적 감정 표출의 극대화를 위해 심지어 가장 미국적인 뮤지컬 문법마저 파괴하는 온갖 파격을 감행한다. 여성 배우의 가슴과 남성 배우의 엉덩이를 노출하는 성애 묘사나 파격적인 욕설 가사는 일부에 불과하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무너뜨림으로써 배우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한국의 마당놀이를 연상시키는 무대전략도 펼쳐진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직사각형(2.0m×1.5m) 목재바닥의 공간은 그들이 묶여 있는 고립된 현실을 상징한다. 그 공간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 배우는 현실에서 억압된 본연의 자아를 되찾기도 하고 관객의 입장에서 여전히 직사각형 공간에 머물고 있는 어른들을 야유하고 공격한다. 그들은 무대 위 양쪽에 위치한 특별객석에 앉거나 심지어 무대를 둘러싼 3면의 벽을 타고 오르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그런 점에서 특별객석에서 앉는 관객은 이 공연의 또 다른 배우다.

4일 개막한 한국어 초연 공연은 이 작품의 파격성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그 표현의 진짜 묘미를 십분 살려내진 못했다. 얼터너티브 록의 느낌이 강한 이 작품의 노래를 제대로 소화하려면 강한 드럼 비트를 뚫고 나가는 고음의 쇳소리가 필요한데 주로 이를 담당한 모리츠 역의 조정석 씨나 맬키어 역의 김무열 씨의 노래는 그런 돌파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다만 맬키어가 친구 모리츠의 자살 책임을 뒤집어쓰고 퇴학당할 위기에서 부르는 ‘완전 새 됐어’(Totally Fucked)는 객석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반면 상반신 노출을 감행하는 벤들라 역의 김유영 씨는 신인답지 않게 당찬 연기를 펼쳤지만 오히려 너무 강한 눈빛 연기가 청순한 벤들라의 이미지 구축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 공연이 기대했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3중의 ‘문화 번역’이 가져온 과부하도 작용했다. 그리스 고전 해석을 놓고 끙끙거리던 19세기 독일의 낯선 풍경을 21세기 미국 대중문화 문법으로 돌파한 원작을 다시 한국의 문화적 맥락 속에 치환해야 하는 어려움 말이다. 2010년 1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02-744-401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