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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부경생]부모-자식이 생물학적 관계?

입력 | 2009-07-09 03:00:00


신문이나 방송은 물론 전문 분야에서도 용어를 사용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 어느 일간지의 1일자 인터넷을 봤더니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마이클) 잭슨, 세 자녀 생물학적 아버지 아니다.’ 부모와 자식은 생물학적으로 맺어지지 않는다. 생물적인 관계이다. 영문 기사에 나왔을 ‘biological’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영한사전에 나오는 ‘생물학적’이라는 단어와 ‘생물적’이라는 단어 중에서 앞의 단어를 별생각 없이 사용한 때문으로 여겨진다.

용어의 오역이나 오용은 일반인은 물론 신문이나 방송, 심지어 전문가에게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예를 들면 천적을 이용한 해충이나 식물 병, 또는 잡초방제(biological control)를 생물적 방제라 하지 않고 생물학적 방제라고, 광을 이용하는 통신(optical communication)을 광통신이라 하지 않고 광학통신이라고 하는 경우와 같다.

비슷한 사례는 학문용어를 번역할 때 더 자주 나타난다. 지금도 전문학술 용어집을 들여다보면 잘못된 번역이 너무 많다. 예를 들면 biological과 복합어를 만들어 생물효율 또는 생물적 효율(efficiency), ∼진화(evolution), ∼침입(invasion), ∼격리(isolation), ∼산화(oxidation), ∼산소요구량(oxygen demand), ∼종(species), ∼스트레스(stress)라고 하면 되는데 생물학 또는 생물학적이라는 군더더기 글자를 자주 붙인다. 법규에까지 올라 있는 biochemical pesticide는 생물의 화합물을 농약으로 개발해 활용하는 경우로 생화합물(또는 자연화합물이나 천연화합물)농약이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biochemical이라는 단어를 무조건 ‘생화학’으로 인식하는 습관이 있어서 실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화학농약이라는 용어로 번역됐다.

단어나 전문용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문용어위원회나 연구소를 만들어 이런 용어를 초기 단계부터 제대로 번역해서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이 혼란을 겪지 않고 사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이 문제를 벌써 인식하고 자연과학 전문용어에 대한 한글 표준표기화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용어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예체능 분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한 가지 용어를 특정한 분야에서만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러 분야에서 같이 사용하므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서로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글표기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문연구소 설립이 힘들다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실에 모든 분야의 용어 전문가가 참여해서 토론할 수 있는 용어표준화위원회와 그 산하에 분야별 전문위원회를 설치하여 문제가 많은 용어에 대한 올바른 한글 표기안을 마련해 국민에게 알리도록 해야 한다.

이런 기구가 생긴다면 우리의 전통문화 산물인 김치를 kimchi 또는 gimchi라고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고추장을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 gochujang으로 표기하는 것을 공인받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외국에 홍보할 일이 점점 많아질 텐데 잘 번역하거나 표현해서 외국인이 더 쉽게 이해하고 더 쉽게 활용하도록 만드는 일이 우리 세대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관심과 주의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점이라 하겠다. 언론에서도 이 문제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를 바란다.

부경생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