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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맛!]매서운 놈, 짭짤한 놈, 칼칼한 놈… 떡볶이

입력 | 2009-07-10 02:57:00


떡볶이에서는 깔깔대는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또박또박 아스팔트 위를 못 박듯이 걷는, 아가씨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린다. 시장골목 아줌마들의 억센 목소리가 들린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아줌마’하고 부르면/낯익은 얼굴이 뒤돌아본다. 그런 얼굴들이/매일매일 시장, 식당, 미장원에서 부산히 움직이다가/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짓는다’(김영남의 ‘아줌마’ 중에서)

떡볶이에서는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도 들린다. “밥 먹었냐, 내 새끼들아.” 어머니는 언제나 부뚜막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있었다. 바리바리 먹을 것 싸가지고, 머나먼 전방산골 군대 아들을 찾았다. 휘어진 두 다리, 오그라진 양쪽 어깨, 쪼글쪼글한 얼굴, 바람 불면 훅하고 날아갈 것 같은 몸피….

‘중앙시장 맨바닥에서 무더기무더기 채소 파셨네/호각을 불며 순경이 들이닥치고/늘어놓은 오이 가지 깻잎들 순경 발길질에/사정없이 걷어 차이고, 왜 이러냐/사람 먹는 것을 왜 걷어 차냐/당신은 새끼도 안 키우냐 악 쓰시던 울 엄니…’(이병초의 ‘문병’ 중에서)

떡볶이는 무슨 가래떡을 쓰느냐가 중요하다. 100% 쌀로 만든 쌀떡이냐, 아니면 100% 밀가루떡이냐. 혹은 쌀에 밀가루 10∼20% 섞은 혼합떡이냐.

쌀과 밀가루 맛은 다르다. 쌀은 찰지지만 약간 텁텁하고, 밀가루는 부드럽지만 어딘가 밍밍하다. 요즘은 대부분 쌀떡이나 혼합쌀을 쓰지만, 가끔은 미끄덩거리는 길거리 밀가루떡볶이가 그립다. 그 미끌미끌 씹히는 맛을 떠올리면 침이 스르르 고인다.

떡볶이 떡은 쫄깃하고 말랑말랑해야 한다. 몽글몽글 탱글탱글해야 한다. 씹히는 질감이 약간 껌을 씹는 듯한 느낌이 나야 맛있다. 가래떡은 오래두면 딱딱해진다. 굳은 떡은 찬물에 담가 불린 뒤, 끓는 물에 살짝 데치는 게 좋다. 그래야 양념이 잘 밴다. 딱딱한 떡을 바로 넣으면 익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풀떡이 된다. 퉁퉁 불어 터진다.

떡볶이 국물은 어느 광고에 나왔던 ‘며느리도 몰라’로 압축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안 가르쳐 준다. 보통 포장마차에서는 어묵 삶은 물로 걸쭉한 맛을 낸다. 집에서는 멸치와 다시마 국물을 쓴다. 부산 같은 항구에서는 새우 멸치 다시마 등 해물 10여 가지로 국물을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국물에 뭘 넣어 양념장을 만드느냐는 것이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다진 마늘, 후추, 산초, 고추냉이, 파, 생강 등 보조재료) 설탕은 기본이다. 파 미나리 당근 버섯 깻잎 등 야채와 라면 쫄면 만두 어묵 달걀 당면 등 각종 부재료도 그렇다.

고추장만 쓰면 간이 텁텁하고 짜다. 고춧가루만 쓰면 뜬 매운맛이 난다. 일정한 비율로 섞는 게 보통이다. 고추장을 많이 쓰는 집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집도 있다. 여기에 메줏가루나 카레가루, 자장가루를 넣는 곳도 있다.

고추장 대신 간장을 쓰는 궁중떡볶이나 간장떡볶이는 아이들이 좋아한다. 일단 맵지 않은 데다 쇠고기의 쫄깃한 맛과 떡의 어우러짐이 일품이다. 고추장떡볶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설탕은 계륵이다. 너무 많으면 몸에 나쁘다.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새콤한 맛이 안 난다. 일부 길거리떡볶이 집에선 설탕을 너무 많이 쓴다. ‘배둘레햄’ 아이들을 양산한다. 요즘 전문점에선 설탕은 조금 쓰고, 양파와 조청 물엿 등을 많이 쓴다. 물엿은 떡이 반질반질 윤기가 나도록 한다.

고추장떡볶이는 마복림신당동떡볶이 집(02-2232-8930)의 마복림 할머니(89)가 원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3년 우연히 자장면 그릇에 가래떡을 빠뜨렸는데, 그 자장소스 묻은 떡이 기가 막히게 맛있더라는 것. 그걸 힌트로 고추장떡볶이를 만들어 히트했다.

맛있는 떡볶이 집은 어디에나 있다. 서울 도심 내수동의 궁중떡볶이전문 김씨도마(02-738-9288)도 그중 하나. 하지만 시장골목이나 학교 주변에 많다. 서울 남대문시장 대도상가 모퉁이의 남대문떡볶이(02-310-9780), 효자동 통인시장 옛날떡볶이(02-735-7289), 서대문 영천시장 원조떡볶이(02-312-5436), 서울 성균관대 앞 나누미떡볶이(02-747-0881), 부산 해운대시장 입구 상국이네집(051-742-9001), 광주 조선대 후문 무진장떡볶이(062-232-8369) 등이 그렇다.

‘시장 어귀 모퉁이에/매일 아침 가게에 나와 파를 다듬는/할머니가 있었다 일 년 내내/고개를 들지도 않고/파를 다듬는 할머니는/오직 파를 다듬기 위해 사는/것처럼 매일 아침/채소가게 어귀에 나와/머리가 하얀 파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최동호의 ‘돈암동시장 파 할머니’ 중에서)

비 오는 날, 철판 위에 자글자글 끓고 있는 떡볶이, 매콤 짭조름 들큰한 냄새, 알큰하고 저릿 느끼한 냄새. 코가 벌렁 뒤집힌다. 이쑤시개로 하나 콕 찍어 먹으면, 혓바닥이 알알하고 칼칼하다. 입 안이 화끈화끈 알딸딸하다. 뱃속에 홧홧 산불이 난다. 매운 총 맞았다.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쇼세키(1867∼1916)는 어느 날 한 정치인으로부터 정중한 초대장을 받았다. 그는 곧 하이쿠 시로 답장을 보냈다.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똥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

정치인들끼리 떡볶이싸움을 하든 말든, 한국여성들은 떡볶이 먹느라 귀 기울일 틈이 없다. 콧잔등에 송글송글 흐르는 땀방울, 먹고 돌아서면 또 먹고 싶은, 오메 저 징하게, 감칠맛 나게 매운 것.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뜨거우면서도 시원한 오뎅 국물.

떡볶이는 삶은 달걀이나 야채튀김 만두 당면 등을 곁들여 먹는 맛으로 먹는다. 고추장소스를 발라 입 안에 살살 굴려 먹는 그 재미는 깨소금 맛이다.

떡볶이 속에 아버지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늘 가족사진 밖에 있다. 셔터를 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인들도 아버지처럼 울타리나 잘 지키고 있으면 좋으련만.

떡볶이는 한국 여성사다. 그 속에 한국 여성들의 삶과 눈물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한국 여성 팔 할은 길거리국민간식 김떡순(김밥, 떡볶이, 순대)이 키웠다. 아니 오떡순(오뎅, 떡볶이, 순대)이 키웠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