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고급문화 향유욕구 강해
신소비층 겨냥 제품 잇단 개발
“디미플리에, 그랑플리에….”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발레 학원. 이곳에서 만난 10여 명의 성인 여성 수강생들은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발레 동작을 의미하는 구호에 맞춰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발레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김나경 씨(33·서울 용산구)도 이중 한 명. 매주 세 번씩 발레학원에서 레슨을 받는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 왔던 ‘백조의 호수’ 공연에 출연할 꿈을 키우고 있다. 김 씨가 다니는 학원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자체 공연을 통해 수강생 누구에게나 ‘발레리나’가 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클래식 문화생활도 즐기고 다이어트나 자세 교정 효과도 함께 누릴 수 있어 만족스럽다”면서 “필요에 따라 개인 강습 등을 받으려면 만만찮은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불황 속에서도 김 씨처럼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는 ‘스마트슈머(smartsumer)’들이 신(新)소비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절약하거나 저가의 대체용품(립스틱 효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쓸 것은 쓰되 이를 통한 문화생활, 건강, 인테리어 등 부수적 효과까지 누리려는 일명 ‘똑똑한 소비자’들로 불린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가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09’ 보고서에 따르면 김 씨처럼 오페라나 발레와 같은 ‘고급문화’를 일상 속에서는 즐기는 일종의 ‘캐주얼 클래식’ 열풍은 그동안 보여주기 위한 ‘명품’ 소비에서 한 계단 진보한 자기만족형 소비 형태로 정의된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고급문화에 대한 소비를 통해 상대적인 우월감을 갖거나 자기 계발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 때문이다.
스마트슈머의 마음을 파고드는 제품개발도 활발하다. 이미 가전제품을 ‘가구’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추기 위해 인테리어 기능은 물론이고 건강 기능까지 갖춘 일명 ‘헬스테리어’ 제품 등이 속속 나오고 있다. LG전자는 하상림 작가의 예술 작품과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장식이 들어간 냉장고를 내놨다. 공기 정화와 무드라이팅 기능을 함께 갖춘 공기청정기 등도 호응을 얻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황 속에서도 스마트슈머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스스로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려는 ‘I am so Hot(난 너무 멋져)’ 욕구가 강하다”며 “기업들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할 만한 제품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