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식이 열린 10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추모객들이 유해가 안장된 ‘아주 작은 비석’ 주위에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비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쓴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가, 비석 받침에는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어록이 새겨져 있다. 김해=사진공동취재단
10일 경남 김해시 봉화산 정토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를 마친 아들 건호 씨가 태극기에 싸인 유골함을 들고 안장식장인 봉하마을 사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김해=사진공동취재단
■ 盧 前 대통령 봉하마을 안장식
추모객 3만여명 유골봉안 지켜봐
문재인 “묘역관리 재단설립 검토”
대한문 앞 49재 집회 충돌없이 끝나
건평씨 구속집행정지… 참석은 못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영원히 잠들었다. 노 전 대통령 국민장장의위원회는 이날 낮 12시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묘역에서 안장식을 가졌다. 이날 하루 3만여 명(경찰 추산)이 봉하마을을 찾았다.
○ 조용히 끝난 봉하마을 안장식
이날 안장식은 49재를 마친 뒤 봉하마을로 옮겨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장남 노건호 씨가 가슴에 안고 묘역에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5월 29일 영결식 이후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안치돼 있었다.
군 조악대 연주에 이어 유족과 정관계 인사, 사회 원로 등이 헌화하고 분향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 씨와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 등 시민대표 14명도 꽃을 바쳤다. 이 자리에서 노건호 씨는 “여러분들이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셔서 유족들이 힘든 가운데 큰 힘이 됐다”고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묘역과 곧 복원될 노 전 대통령 생가 등을 관리할 재단 설립을 검토 중”이라며 “유족 및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사람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안장식에는 한명숙 이해찬 전 국무총리, 문희상 이병완 전 대통령비서실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이기명 전 후원회장 등 친노 인사들과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전국에서 추모 행사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분향소가 설치됐던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오후 3시 반부터 불교식 49재와 원불교식 제사가 잇따라 열렸다. 대한문 앞에 모인 시민 1800여 명(경찰 추산)은 노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헌화하거나 묵념을 했다. 이들 중 500여 명은 오후 10시경부터는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앞으로 자리를 옮겨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대한문 집회를 주최한 촛불시민연석회의 등이 서울광장에서 열겠다고 예고한 추모문화제에 대해 금지 통고를 한 경찰은 54개 중대 43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서울광장 진입을 차단했다. 하지만 대한문 집회를 봉쇄하거나 서울광장 주변에 차벽을 치지는 않았다. 대학생행동연대 소속 학생 200여 명도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전국 주요 사찰에서도 49재가 일제히 봉행됐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시민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49재가 열렸다. 해인사, 통도사, 월정사, 동화사 등 조계종 전국 25개 교구 본사를 비롯한 상당수 사찰에서 49재가 치러졌다.
한편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는 다리 혈관이 좁아지는 협착증으로 7일 수술을 받은 뒤 통원 치료를 해오다 10일부터 일주일간 구속집행이 정지됐으나 49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김해=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 盧 前 대통령 묘역은
▼너럭바위가 비석 겸 봉분… ‘참여정부 5년’ DVD 함께 묻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은 ‘화장해라. 아주 작은 비석만 남겨라’는 고인의 유언대로 꾸며졌다. 땅속에 석곽(石槨)을 만들어 유골을 연꽃 모양의 석합(石盒·항아리 유골함을 보관하는 곳)에 담은 뒤 강판으로 덮고 그 위에 너럭바위를 올려 비석을 대신했다.
석합은 2개를 봉안했다.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을, 나머지는 권양숙 여사가 별세하면 안장할 예정이다. 석합 덮개에는 한자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1946∼2009’라고 새겼다. 비석을 받치는 강판에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자주 언급했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발언을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글씨로 새겨 넣었다. 높이 40cm, 가로세로 각각 2m인 너럭바위 자연석은 비석 겸 봉분으로 삼았다. 너럭바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쓴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글자만 있다. 부장품으로는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이라는 5부작 다큐멘터리 DVD와 노 전 대통령의 일대기 및 추모 영상을 담은 10분짜리 DVD가 넣어졌다.
묘역은 노 전 대통령의 생가와 사저, 봉화산 사자바위, 환경운동을 하던 화포천, 삶을 마감했던 부엉이바위가 모두 보이는 곳이다. 유홍준 아주 작은 비석 건립위원장은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인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에 따라 묘역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김해=윤희각 기자 t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