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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SCHOOL DIARY]급구! 내게 쓴소리해줄∼

입력 | 2009-07-14 02:56:00


“얼굴은 몰라, 문자로만 만나자”
급구! 내게 쓴소리해줄 ‘스터디메이트’∼

“난 여자고, 정말 서로 쓴소리 거침없이 날려줄 수 있는 스터디메이트가 필요해. 생각대로라면 난 이미 전교 1등이어야 하지만 항상 실천이 안 되더라고. 내가 밤 11시에 집에 오거든, 그 시간이랑 주말에 문자 주고받을 사람, 쪽지 줘.”(아이디 naewoon0324)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 ‘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자(cafe.naver.com/suhui.cafe)’의 고등학교 1학년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스터디메이트’는 말 그대로 ‘공부친구’를 의미한다. 대학생들이 토익, 토플 등 영어시험이나 취업을 위해 모여 공부하는 ‘스터디’의 변형된 형태로 최근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하나의 관계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공부가 목적인 만큼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않는다거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은 대학생 스터디 모임과 다르다.

스터디메이트를 원하는 학생들은 일단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려 신청자를 모집한다. 글에 자신의 성적이나 목표대학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슷한 수준이어야 공감대 형성이 잘 되고 경쟁의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하겠다는 신청자의 댓글이 달리면 휴대전화 번호를 주고받은 뒤 온라인으로 쪽지를 주고받거나, 문자로 연락한다.

고등학교 1학년 정모 양(15·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은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른 직후 스터디메이트를 찾아 나섰다. 계획 없이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깐깐하게 점검해줄 친구가 필요했다. 학교, 학원 친구를 두고 왜 하필 인터넷에서 스터디메이트를 찾을까? 정 양은 “친한 친구들과는 문자로 장난을 치거나, 쓸데없는 얘기로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 양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자 서울 노원구의 한 일반계고에 다니는 김모 군(15)에게 쪽지가 왔다.

정 양은 중간고사 평균 93점, 모의고사에서 언어·외국어 1등급, 수리 2등급을 받은 중상위권 학생이다. 김 군은 정 양보다 성적이 조금 낮다. 둘은 각자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는 오전 1시 반부터 잠들기 전까지 약 한 시간 동안 하루 평균 5통에서 10통의 문자를 주고받는다. 문자 내용은 “오늘 수학 공부하려고 했는데 싸이질(싸이월드를 사용한다는 통신용어)만 3시간 했어. ㅠㅠ” “네가 싸이질한 만큼 너의 적들은 공부를 했을 거야” “내일 계획은 외국어 모의고사 1회 풀고, 고전문학 2강 정리하는 거야” 등이다.

정 양은 때로 김 군으로부터 ‘고민상담’ 문자를 받기도 한다

‘중학교 때는 여자친구한테 고백을 받아도 냉정하게 거절했는데 남고(남학교) 오니까 애들이 반팅(반미팅)하고 자기 여친(여자친구) 자랑하는데 솔직히 부러워’ ‘내 외모는 딱 봤을 때 카리스마 있는 편인데 솔직히 키가 좀 작아서 고민이야’ 등이다. 스터디메이트끼리 개인적인 대화는 삼가한다는 원칙을 세웠던 정 양은 ‘그런 생각할 시간 있으면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라’고 단호하게 조언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학교도 다르지만 같은 모의고사를 치른 뒤 서로의 성적을 공개했을 때 생긴 묘한 경쟁심은 어쩔 수 없었다. 정 양은 “3월 모의고사 때 수리 4등급이었던 그 친구가 6월 모의고사에서 2등급으로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은근히 씁쓸했다”고 털어놨다. 똑같이 열심히 공부한 것 같았는데 정 양의 수리 영역 점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정 양은 “같이 공부해온 스터디메이트의 성적이 오른 것이 좋기도 하면서 ‘걔가 공부하는 동안 나는 뭐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둘의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오프라인에서 만날 날이 올까?

“둘 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면 한 번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 양의 말이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