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통해 본 홍상수 감독의 속마음 파헤치기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곧 예술
영화는 작은 생각들의 덩어리
예를 들어보자. 이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메시지는 뭘까. 제목에서 이미 말해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 일에 상관하지 말라는 얘기다. 극중 고순임(고현정)의 대사대로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홍 감독은 영화감독으로 나오는 주인공 구경남(김태우)을 통해 지식인의 지적기만과 자기모순을 비꼰다.
이 영화의 대사 속에는 홍 감독의 예술적 지향점과 고민이 천연덕스러울 만큼 공공연히 드러나 있다.
①“제 영화 속에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서사도 없고 교훈이나 메시지, 뭐 이런 것도 없거나 불확실하고, 예쁘거나 좋은 화면도 없습니다. 제 능력과 기질은 하나밖에 못하는 겁니다. 정말로 몰라서 (영화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야 하고, 그 과정이 정말로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제가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과정이 나로 하여금 계속 뭔가를 발견하도록 하고, 저는 그냥 그걸 수렴하고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것뿐입니다.”(한 영화학도가 “왜 감독님은 남들이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느냐”는 질문에 주인공이)
→‘예술적 행위는 그 자체로도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여야 하고 그 예술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예술’이라는 믿음을 홍 감독은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쓰는 법이 없다. 그 대신 트리트먼트(일종의 ‘개요’) 상태에서 연출을 시작하며(심지어 이것도 없는 경우가 있다), 대본은 촬영 당일 아침에 떠오른 생각을 써서 배우에게 준다. 시나리오를 쓴 뒤 그대로 연출하는 건 ‘죽은’ 행위라는 것. 홍 감독이 자기 영화세계에 대해 사용하는 ‘3대 용어’도 ‘과정’ ‘조각’ ‘덩어리’다. 영화는 만들기 ‘과정’ 자체도 영화이고, 그 과정 속에서 그날그날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을 모아(이때 ‘조각’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이유가 있다), 하나의 예술적 ‘덩어리’로 형성해 나간다는 것. 그래서 “내 영화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나도 모른다”는 유식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②“저는 감독님의 영화를 통해서 인간심리를 이해하는 기준을 얻었습니다. 감독님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못 이해했을, 그런 인간들이 있었을 겁니다.”(주인공에게 한 평론가가)
→홍 감독이 어떤 평론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대사로 옮겼을 수도 있다. 사실은, 조소(嘲笑)가 담겼다. 자신은 ‘조각’을 모아 살아 있는 ‘덩어리’를 만들어갈 뿐, 인간심리에 대한 어떤 근사한 생각을 해본 적 없다는 것. 완성된 작품을 두고 ‘인간심리를 이해하는 기준’이니 어쩌니 하며 장광설이 나오지만,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못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독님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가요”라는 영화학도의 질문에 주인공이 “‘자유’인 거 같아요. 쓸데없는 이상이나 남의 욕망에 빠져서 괜히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만 원하고 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의 자유!”라고 대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술 작품에 대해 ‘근사한’ 해석과 의미를 찾아내려는 것보다, 예술을 그저 살아 있는 그대로의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태도가 진정한 자유요, 힘이란 것.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