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농구부는 1977년부터 4년 동안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대학 무대를 평정했을 뿐 아니라 실업팀 선배들까지 압도하면서 12차례나 정상에 섰다. 77학번 동기인 이충희와 임정명이 그 중심이었다. 한솥밥을 먹으며 호흡을 맞췄어도 이들은 강한 개성으로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펼쳤다. 이들과 동기인 한 농구인은 “둘은 너무 달랐다. 서로 최고라는 의식이 강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 언론은 ‘박한이라는 무서운 코치가 두 사람을 하나로 묶었다’고 보도했다. 대학 졸업반 때인 1980년 열띤 스카우트 공세 속에 둘 다 삼성 입단이 유력했으나 임정명이 당시로선 파격적인 1억5000만 원 이상의 조건으로 삼성 유니폼을 입기로 결정되면서 이충희는 3억 원 이상을 받고 현대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와 삼성의 라이벌 구도 속에서 이들은 더욱 뜨겁게 맞붙었다. 센터였던 임정명은 포지션이 다른 슈터 이충희의 전담 수비수를 자청해 거친 몸싸움을 펼쳤다. ‘물과 기름’ 같던 이들 때문에 고려대 동문 모임도 반쪽으로 갈라졌다. 삼성 조승연 단장은 “하늘에 태양이 두 개 있을 수 없듯이 이들은 동시대에 존재하면서 불편한 관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던 이충희와 임정명이 모교 고려대 감독 자리를 둘러싼 갈등에 휘말렸다. 임 감독이 강압적인 팀 운영에 따른 선수와 학부모들의 반발로 5월 말 물러난 뒤 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이 감독 역시 선수 폭행 시비에 휘말려 고소까지 당했다.
학교 측은 임 감독에게 해임 통보도 하지 않았고 이 감독에게는 정식 발령도 내지 않아 혼선을 부추겼다. 임 감독은 연말까지 계약기간이 남았다며 숙소 방도 비우지 않았다. 이 감독은 협회에 등록이 안돼 다음 주 데뷔전에서 벤치에 못 앉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화려한 스타 시절과 달리 지도자로는 아직 빛을 못 보고 있다. 선수 부모의 지나친 입김과 학교 측의 어설픈 행정력에 감독직이 흔들린 것도 비슷하다. 30년 넘게 얽히고설킨 이들의 인연은 퍽 질긴 것 같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