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결과에 쏠린 눈KT노조 간부들이 1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KT 노조사무실에서 민주노총 탈퇴 투표결과를 집계하고 있다. KT는 조합원 94.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민주노총 탈퇴를 가결했다. 성남=전영한 기자
■ 탈퇴 의미와 전망
투쟁일변도 노동운동 반발
‘민노총 넘버3’ 14년 동거 끝내
IT연맹 사실상 와해
제3노총 건설 이어질지 주목
조합원이 약 3만 명인 KT 노조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탈퇴로 향후 노동계 세력 판도와 노동운동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 규모도 크지만 이번 탈퇴가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표방하는 제3노총 건설과도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제3노총이 뜰 경우 지금까지 투쟁일변도였던 우리나라의 노동운동도 타협과 대안 제시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KT 노조 탈퇴의 의미
KT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단순한 산하 개별 사업장 노조의 상급단체 탈퇴와는 다르다. 민주노총 조합원 약 65만 명 가운데(지난해 말 현재) KT 노조 조합원은 2만8434명으로 1위 현대자동차(4만5000여 명), 2위 기아자동차(3만500여 명)에 이어 민주노총 내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각 지역본부와 16개 산별 노조의 연맹 체제. 현대차와 기아차가 민주노총의 주력인 전국금속노조연맹 소속인 반면 KT 노조는 IT연맹의 주력이다. IT연맹 조합원은 3만535여 명(2008년말 기준)이며 이 중 KT 노조가 2만8000여 명을 차지한다. 이번 탈퇴로 민주노총을 이루는 16개 연맹 중 하나가 사실상 와해되는 셈이다.
이런 대형 사업장 노조의 탈퇴는 투쟁일변도인 ‘민주노총식’ 노동운동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올 상반기 민주노총에서는 서울도시철도, 인천지하철, 영진약품 등 10여 개 사업장 노조가 탈퇴했지만 그때마다 민주노총은 개별사업장 문제로 치부했다. 뼈를 깎는 쇄신 대신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보호법 개정 논란, 쌍용자동차 문제 등 국가적 현안이 생길 때마다 타협과 대화보다는 ‘총파업 불사’를 선언하며 배수진을 쳤다. 1995년 민주노총 창립 멤버이자, 14년 동지인 KT 노조의 결별은 이런 민주노총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 무르익는 제3노총 건설
KT 노조가 당장 제3노총 건설을 표방하거나 선언한 것은 아니다. KT 노조는 민주노총 탈퇴 이유로 ‘조합원을 위한 노동운동과 중도개혁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주노총을 탈퇴했거나 탈퇴가 예정된 대형 노조들이 내년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자연스럽게 한곳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노동계의 한 핵심 인사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총과의 관계가 있어 당장 제3노총을 선언할 수는 없고,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며 “일단 기존 노총을 나올 노조는 다 나오고 이후에 모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에서는 3월 단국대 진해택시 승일실업이, 4월 인천지하철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10여 개 노조가 줄줄이 탈퇴했다. 조합원 1만여 명의 서울메트로(지하철 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지하철 5∼8호선) 등 전국 6개 지하철 노조도 9월 ‘전국지하철노조연맹’(가칭)을 결성하기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가질 예정이다. 전국지하철노조연맹도 ‘정치 참여 배격, 조합원을 위한 노조’를 기치로 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이 같은 일련의 민주노총 탈퇴 움직임이 내년 복수노조 시행과 함께 제3노총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대형 사업장일수록 출신과 노선에 따라 다양한 파벌이 형성돼 있고,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내부 투쟁이 극심하다”며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한 사업장 내에 반대파에 의한 제2, 제3의 노조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이들은 결국 하나로 모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노동운동도 변화할 듯
제3노총 건설을 추진하는 한 노동계 인사는 “새로운 노동운동은 조합원 복지를 최대 관심사로 하는 ‘조합원이 주인이 되는, 조합원을 위한 노조’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또 정권과의 ‘한판 싸움’ 대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이다. 이 관계자는 “노조가 정치에 참여하면 이미 노조의 성격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에 조언과 대안은 제시하되 노조의 직접 참여는 지양하자는 것이 참여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라고 전했다. 제3노총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될 경우 이라크 파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 노동운동과 관계없는 사안에 노동계가 직접 뛰어들어 갈등을 증폭하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 관계자는 “노동운동이 거리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총파업을 운운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냐”며 “테이블 위에서도 얼마든지 노동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