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터지고 수습하는 일은 늘 반복되고 있다. 주연배우만 바꾼 비슷한 스토리의 드라마처럼 말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가나 집값이 곤두박질치며 경기가 무너지는 모습이나 경기부양을 위해 풀린 막대한 통화가 다른 자산을 자극해 몇 년 뒤 다시 거품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세계 금융사에서 심심찮게 되풀이됐다. 이번 금융위기도 이런 양상이 반복되며 복습의 절차를 밟는 모습이다.
다만 이번에는 현 사태만의 고유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이번 사태만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해야 실수를 줄이고 시장 대응도 적절하게 할 수 있다.
첫째, 이번에도 각국 증시가 장기간 따로 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다 보니 전 세계 경기가 동시에 침체에 빠졌다. 세계는 예전보다 더 굵고 강한 끈으로 묶여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세계 경제는 서로 보완적으로 돕기보다는 일단 방향성이 잡히면 그 추세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각국의 금리나 물가, 주가의 상관성이 높아져 서로 영향을 주는 동시에 그 영향을 더 심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얘기다.
둘째, 금융의 힘이 과거보다 커져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동시에 금리를 내렸다. 언젠가는 또 동시에 돈줄을 죄기 시작할 것이다. 은행에 대한 규제가 과거보다 강화되고 파생상품을 회피하는 탓에 비록 전성기보다는 한풀 꺾였지만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이동 규모는 여전히 크다. 따라서 금융은 여전히 실물을 압도할 것이다. 오히려 금융에 의한 실물지표의 자극과 왜곡, 착시 현상은 어느 때보다 빈번할 것이다. 환율이나 주가도 럭비공처럼 튈 가능성이 훨씬 높다.
셋째, 중국과 미국의 역할 문제다. 과거의 금융위기가 국지전이었다면 지금은 세계대전 수준이다. 전투가 치열해질수록 각국의 동상이몽은 더욱 깊어진다. 사람들은 지금 중국과 미국, 즉 차메리카(chamerica) 연합군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오기 전에 자국의 위상을 높이려 하고 있고, 미국은 이번 기회에 경제 시스템의 위험을 낮추고 경제대국으로서의 면모를 되찾는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이 같은 구도에서 중국과 미국 양국에 교역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다.
지금 무엇을 예단해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이번 위기의 수습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특징들을 다시 한 번 고려해 반걸음만 앞서 대응해도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