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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당해도 좋지만 北 돌아가긴 싫어”

입력 | 2009-07-18 03:03:00

日서 책 출간39년간의 북한 생활을 끝내고 2004년 일본에서 새 인생을 시작한 주한미군 탈영병 찰스 로버트 젱킨스 씨. 그가 2005년 출판한 저서 ‘어쩔 수 없었던 공산주의자(The Reluctant Communist)’의 일본판 ‘고백’은 일본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65년 주한미군 시절 월북 젱킨스 씨 日서 ‘제2의 인생’
“북한서 보낸 39년은 악몽…요즘도 잡혀가는 꿈꿔”

일본 서부 해안가의 니가타(新o) 현 근처의 섬 사도(佐渡)에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 한 노인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자 줄을 서서 그를 기다리던 관광객 사이에서 반가운 탄성이 터졌다. “젱킨스 씨가 왔다!” 곧이어 그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고 사인 요청 공세가 이어졌다.

이 작은 기념품 가게의 스타는 찰스 로버트 젱킨스 씨(69). 그는 40년 가까이 ‘푸른 눈의 평양 시민’으로 살다 2004년 북한을 빠져나와 일본에 정착한 외국인이다. 젊은 시절 한순간의 ‘철없는 월북’으로 지옥 같은 생활을 경험한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그가 일하는 가게는 관광 명소가 됐다. 16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일본에서 ‘제2의 인생’을 찾은 젱킨스 씨의 극적인 삶을 전했다.

1965년 한국 비무장지대(DMZ)에서 근무하던 25세 주한미군 젱킨스 씨는 어느 날 밤 철책선을 넘었다. 예정대로 베트남에 배치되면 죽게 된다는 두려움 속에 캔맥주 10개를 마시고 감행한 탈영이었다. 냉전시대에 제 발로 들어온 미국인을 저당물로 잡은 북한은 그에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에 대한 사상교육을 한 뒤 북한체제 홍보용 영화 출연 등 각종 선전선동에 활용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허기 속에 구타와 감시로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상태”가 계속됐다. 1978년 피랍 일본인인 소가 히토미 씨와 결혼해 두 딸을 얻은 그는 2004년 일본 정부의 북한 내 피랍 일본인과 가족 송환정책 덕분에 39년간의 북한 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하루 300장 관광객과 사진
‘걸어다니는 관광명소’

그는 요즘 첫 저서 ‘어쩔 수 없었던 공산주의자(The Reluctant Communist)’에 이은 두 번째 책을 준비하며 때때로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관광객들과 하루 300장이 넘는 기념사진을 찍는 시간도 모자라 실물 크기의 사진을 매장에 세워놔야 할 만큼 인기도 높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북한 정보요원에게 끌려가는 악몽을 꾼다. 혹시나 북한 스파이가 자신을 감시하지 않는지 주변을 살피는 게 습관이 됐다. 그는 “나는 북한을 그 어느 누구보다 잘 아는 외국인”이라며 “살해돼도 상관없지만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은 싫다”고 말했다. 기아로 숨진 뒤 강에 내던져진 북한 주민의 시체에 물고기들이 달라붙는 장면이 떠올라 생선회도 먹지 못한다. 일본어가 서투르지만 북한의 세뇌 학습과 일방적인 암기 강요에 진저리가 난 탓인지 “더 이상은 (단어를) 못 외우겠다”며 그는 한숨쉬었다.

일본에 정착했지만 그는 여전히 현재 소속된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낯선 이방인이다. 옛 전우들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철없이 탈영했던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도 떨쳐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는 “북한의 끔찍한 실상을 알려야 한다”며 신변을 걱정하는 가족의 만류에도 저술 활동과 언론 인터뷰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며 “그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김정일의 장단에 맞춰 꼭두각시 인형처럼 이용당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