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보다 고용안정’ 실용주의가 이겼다
조합원이 3만 명에 가까운 KT노조가 17일 상급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탈퇴했다. KT노조는 이날 민주노총 탈퇴 찬반투표를 갖고 94.9%의 찬성(투표 참가자 2만7018명 중 2만5647명)으로 가결했다. KT노조는 1995년 민주노총 창립 멤버이며, 규모로는 민주노총 내 3위다. KT노조의 탈퇴는 노동운동 방식을 놓고 그동안 민주노총과 빚은 갈등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근 노동계에서 불고 있는 제3노총 건설 움직임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KT노조는 1995년 3만여 명이 참석한 서울 보라매공원 대규모 파업 결의 집회로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가전복세력’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표적인 강성 노조였다. 그러나 민영화 바람과 함께 2001년부터 온건 노선으로 돌아섰으며, 2003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조가 먼저 구조조정을 제안하는 등 노동운동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2006년 1월에는 노조 간부 및 대의원 등 600여 명이 3년 임기 동안 자동 승진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KT노조는 2004년 민주노총 가입 사업장으로는 처음으로 정부로부터 신노사문화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민주노총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2006년 2월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열린 민주노총 지도부 선출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일부 관계자들이 KT노조 대의원의 출입을 막기도 했다. 이들은 “자본의 앞잡이인 KT노조는 민주노총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KT노조는 “대의원대회가 일부 ‘깽판’ 세력의 폭력에 의해 무산됐다”고 반발했다.
‘조합원을 위한 노조’를 목표로 한 제3노총 건설 움직임도 탈퇴에 한몫했다. KT노조는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노총의 과도한 정치투쟁에 염증을 느낀 조합원들이 좀 더 실질적인 노동운동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KT노조 허진 교육선전실장은 “조합원들의 고용을 지킬 수 있는 실용주의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노조의 사회적 역할을 버리고 조합원 실리만을 추구하는 노선에 대한 문제 제기가 거세다”고 밝혔다.
한편 KT의 IT 자회사인 KT데이타시스템 노조도 이날 조합원 총회를 열어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