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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

입력 | 2009-07-21 14:08:00


사장 찰스가 VVIP석에 앉자마자 경기가 시작되었다. 링을 내려다보고 선 관객들은 주먹을 휘저으며 쌍소리를 해댔다. 그들 중 상당수가 기계몸 50퍼센트를 넘어선 사이보그였다. VVIP석은 일반 객석보다 한 층 위에 자리 잡았다. 찰스는 세 번 째 다리를 퉁퉁 투웅 쳐가며 시거를 피워댔다. 그는 오늘 시합에 방송국 설림금의 절반 가까이를 걸었다. 예상 승률은 10 : 1. 배팅한 사이보그 격투가가 승리하면, 그는 같은 회사를 다섯 개 더 세울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오늘 그에게 행운을 선사할 격투가는 서사라였다.

사이보그 격투기는 잔혹성과 선정성 때문에 특별시연합법으로 금지된 스포츠였다. 불법일수록 판돈은 올라갔다.

서사라는 올해 등장한 격투가 중 유일한 여자였다. 연승을 거두었지만 예상 승률은 여전히 최하였다. 지난 시합에서 왼팔과 둔부 그리고 어깨 쪽이 완전히 파괴된 데다가 이번 상대가 21연승을 거둔 검은 들소 슐츠인 탓이다. 슐츠는 30초 이상 경기를 끌어본 적이 없고, 상대방을 항상 '회생불능'으로 보내버리는 사이보그 격투계의 최강자였다.

"죽느냐 사느냐 둘 중 하나지. 네게 준 돈을 오늘 다 뽑아야 하거든."

찰스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주먹을 쥐었다.

사라가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링 중앙으로 나섰다. 2미터 5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거구인 슐츠는 양손으로 제 가슴을 치며 곧장 나아왔다. 나비와 바위의 싸움이랄까.

"찢어버려."

"슐츠, 씹어 먹엇!"

관객들은 슐츠가 사라를 처참하게 짓밟은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 슐츠가 걸쭉한 침을 바닥에 흘려댔다.

"어딜 먼저 꺾어줄까? 목부터 비틀까? 아님 허리를 아예 통째로……."

그 순간 사라가 몸을 띄워, 플라잉 니 킥으로 슐츠의 턱을 올려붙이곤 공중제비를 돌아 내렸다. 침묵이 얼음처럼 경기장을 휘감았다. 젖혀졌던 슐츠의 머리가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제야 다시 왁자지껄 시끄러운 응원이 시작되었다. 슐츠가 썩은 웃음을 보이며 사라에게 다가갔다.

사라는 왼쪽으로 돌며 브라질리언 킥을 허리에 연이어 꽂았다. 슐츠는 블로킹도 하지 않고, 사라의 날카로운 킥을 몸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또 썩은 웃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관객 중 한 사람이 외쳤다.

"20초!"

슐츠는 언제나 경기 시작 30초 안에 상황을 종료했다. 이제 10초 남은 것이다. 슐츠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를 링 코너로 몰았다. 허리태클을 위해 두 발로 쿠쿵 링을 내리찍는 순간, 사라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빙글 세 번 돌며 회심의 엘보우 블로를 날렸다. 이번에는 슐츠도 한 걸음 물러섰다. 뺨이 움푹 패면서 인공살갗이 찢어지고 복잡한 기계부품이 노출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거기까지였다.

슐츠는 물러서면서도 팔을 뻗어 사라의 팔꿈치를 쥐었다. 그리고 힘껏 당기면서 래빗 펀치(rabbit punch, 후두부를 가격하는 펀치)를 날렸다. 뒤통수를 맞은 사라가 무릎을 꿇고 고꾸라졌다.

슐츠는 연결 동작으로 스탬핑을 퍼부었다. 크고 넓은 발이 사라의 팔과 다리 그리고 온몸을 짓밟았다. 머리까지 노렸지만 사라가 필사적으로 몸을 굴려 피했다.

"일어섯! 반격해, 당장."

퉁퉁퉁퉁 세 번 째 다리를 두드리며 외쳤다.

그러나 사라는 슐츠의 발을 피해 좌우로 뒹굴기에도 바빴다. 허리를 밟혀 새우처럼 움츠리고 등을 밟혀 활처럼 휘었다. 가슴 한 가운데를 밟힌 후엔 파다닥 경련을 일으켰다가 멈췄다. 25초가 흘렀다.

슐츠는 스탬핑을 멈추고 두 걸음 물러섰다. 검은 들소 슐츠의 마지막 일격은 사커 볼 킥이었다. 머리를 걷어차인 상대는 대부분 목이 부러지거나 머리만 떨어져 나갔다.

"사커! 사커! 사커!"

관객들이 사커 볼 킥을 연호했다.

슐츠가 오른 발을 쓰윽 뒤로 뺐다가 달렸다. 그의 오른 발이 사라의 검은 뺨을 때리려는 순간, 사라가 빙글 물구나무를 선 채 달려오는 슐츠의 콧잔등을 정확히 때렸다. W의 최고 기술 비각(飛脚)이었다.

목이 120도 넘게 꺾인 슐츠가 거목이 잘리듯 쓰러졌다.

사라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