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로 용산 참사가 벌어진 지 만 6개월이 지났다. 사건 후 필자는 ‘화염병보다 무서운 권리금 폭탄’이라는 제목의 이 난 칼럼(2월 4일자)에서 “상가재개발 분쟁의 핵심은 세입자들끼리 폭탄돌리기 하는 권리금이다. 하지만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며 권리금을 법제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행을 없애가야 한다. 이는 정부 몫이다. 용산 사건은 권리금폭탄 제거라는 새로운 숙제를 정부에 던졌다”라고 썼다.
권리금 폐해 알면서도 딴전
재개발 현장에서 건물주와 세입자는 사사건건 대립하지만 딱 하나 의견일치를 보이는 대목이 있다. ‘분쟁의 초점은 권리금’이라는 데다. 그러나 국토해양부는 영 딴전이다. 사건 석 달 후 정부는 꽤 긴 제도개선책을 발표했지만 정작 권리금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격화소양(隔靴搔양·신 신고 발바닥 긁기)이다.
그 사이 권리금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위기가 양산한 실직자들이 창업에 뛰어들면서 올 1월 이후 자영업자가 22만 명 늘었다. ‘권리금 덫’에 걸린 사람도 꼭 그만큼 늘었다는 뜻. 그 여파로 올해 1분기의 전국 권리금이 전분기보다 47% 올랐고, 서울 지역의 권리금은 점포당 평균 1억 원을 넘어섰다. 기막힌 일이다.
그렇다면 당국자들은 ‘권리금엔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천만에. 그들은 말한다. “폐해는 익히 알고 있다. 권리금 인정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폐지 방안을 논의했는데 어려운 문제가 많아 현시점에서 손대기 힘들었다.” 그렇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 피해버린 것이다.
사람이 만든 문제를 사람이 못 풀 리 없다. 쉽지 않을 뿐이다. 점진적으로 없애나가면 어떨까. 예를 들어 권리금을 일제히 신고토록 한 후, 매년 10분의 1씩 정액 상각하다가, 상각이 끝난 후 완전 불법화하는 특별법 제정을 생각할 수 있다. 또 상각 기간엔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보내지 못하도록 하되, 세입자가 원해서 나갈 경우엔 ‘잔존가치 이하의 권리금 수수’만 허용하는 것이다.
권리금 상각비용을 세입자만 치르면 안 된다. 상각의 최종수혜자는 건물주다. 권리금이 사라지면 그만큼 임대료가 올라가기 때문. 그렇다면 상각 기간엔 임대료를 동결하거나, 정해진 산식(算式)에 따라 일부 인하토록 해야 조금이나마 공평해진다. 한시적 세금 경감도 고려할 만하다.
권리금 액수를 확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입자끼리 권리금을 주고받을 때 시설비와 바닥권리금을 각각 표시하는 ‘점포양도계약서’를 작성하는 까닭이다. 신고액을 둘러싸고 다툼이 생기면? 시군구 권리금분쟁조정위(가칭)에서 조정하면 된다. 세입자가 권리금을 포기하고 그냥 나가겠다면? 지금도 있는 일이다. 가슴 아픈 사례지만 권리금만은 단번에 소멸된다.
불법화된 후 권리금을 받거나 요구하다가 적발되면 엄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설혹 형태를 바꿔 요구한다 해도 신고를 유도하는 것은 쉽다.
비겁한 국민배신, 反서민 행보
일각에선 계약자유의 원칙을 들어 권리금 폐지에 난색을 보인다. 그러나 계약자유의 범위가 무한한 건 아니다. 각국이 이자율을 제한하고 (연예인) 노예계약, 장기매매를 금지하는 것은 이 원칙을 몰라서가 아니다. 문명사회는 반사회적 거래나 한쪽의 궁벽한 처지로 인한 불공정거래를 계약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하지 않는다.
오랜 관행을 없애려면 마찰음이 난다. 정치적 부담도 각오해야 한다. 노회한 공무원들이 갖은 핑계로 직무를 유기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이것, 즉 ‘건드리다가 자칫 동티날까봐’라는 게 필자 판단이다. 아, 이들은 제2, 제3 용산 참사가 터져야 움직일 것인가.
580만 자영업자가 폭탄돌리기에 내몰린 잔혹한 현실을 모른 척 외면하는 관료 행태는 복지부동 수준을 넘어선다. 이는 비겁한 국민배신이다. ‘실용 정부’나 ‘친서민 행보’와는 반대말이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