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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

입력 | 2009-07-22 13:55:00


라커룸으로 들어선 사라는 천장을 향해 드러누웠다가 곧 허리를 돌려 구토를 시작했다. 옆구리를 채였을 때 폐는 물론 위와 식도까지 연결망이 얽힌 듯했다. 음식물을 모두 뱉어냈는데도 계속 구토가 치밀었다. 허억 허어억. 숨을 쉴 때마다 가슴과 머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온몸 마디마디가 쇠바늘로 찔리는 기분이었다.

볼테르의 손길이 그리웠다. 그가 몇 부분만 만지면 구토도 고통도 그칠 듯했다. 그러나 연락할 수는 없었다. 글라슈트가 최상의 조건으로 결승전에 나가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글라슈트를 사장 찰스에게 팔아넘기지 않고도, 최고의 부품으로 로봇 내부를 정비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사라는 당연히 그것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였다. 볼테르는 이 더러운 비밀을 모른 채 끝까지 당당해야 하고 깨끗해야 한다.

와 선이 닿은 것은 행운이었다. 사이보그 격투기가 은밀히 성업 중이라는 풍문은 들었지만, 가 큰 손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라커룸이 열렸다.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라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지만 머리만 겨우 돌렸다. 빛을 등진 사내가 바닥에 가방을 놓았다.

"미리 대전료는 지급했지만 이건 특별수당이야. 승리의 보상이 얼마나 큰 지 확인하라고 특별시연합지폐로 준비했으이. 사장님께서 크게 기뻐하셨어. 또 시합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와."

사내가 문을 닫고 나가자, 다시 어둠이 가득 찼다.

사라는 몸을 굴려 탁자에서 떨어졌다. 비명을 삼키며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곤두선 신경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이 불법 경기장을 벗어나서 결승전이 열리는 상암 경기장으로 가야 한다.

마음이 급했다. 먼저 가방을 향해 기었다. 팔을 뻗을 때마다 아팠다. 고통에 더 큰 고통이 해일처럼 덮쳤다.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기우뚱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가방을 쥐고 천천히 당겼다. 후우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경기장 뒷문까지만 가면 된다. 거기, 자동운전으로 선택된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첫걸음을 뗐다. 무릎이 흔들리면서 허리까지 휘청거렸다. 어금니를 앙다물며 혀끝까지 올라온 비명을 다시 목구멍으로 내려 보냈다. 왼발을 내딛기 위해 무게 중심을 옮기는 순간, 뚝 하는 소리가 몸에서 들렸다. 머리도 아니고 가슴도 아니고 배도 아닌, 기계몸도 아니고 천연몸도 아닌, 몸 전체가 한 순간에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모래성이 무너지듯, 사라가 쓰러졌다. 가방이 떨어지면서 열렸다. 지폐 다발 서넛이 바닥으로 튀어나왔다.

안 돼.

손을 뻗어 지폐를 주우려고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은 팔뿐만이 아니었다. 다리도 허리도 머리도 하다못해 새끼손가락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눈물이 흘렀다. 결코 울지 않는 사라였지만, 이 순간만은 슬픔을 누를 길이 없었다. 절망의 바닥이었다.

그때, 다시 문이 열렸다. 빛이 순식간에 사라의 쓰러진 몸과 열린 가방을 감쌌다. 빛 속으로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키가 작고 호리호리했다.

사라가 필사적으로 턱을 당기며 눈을 크게 떴다. 강렬한 빛살과 눈물 때문에, 문을 등진 불청객의 얼굴이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가방에 지폐를 주워 담았다.

"내…… 돈. 내 돈이야."

사라가 피를 토하듯 말을 뱉었다.

불청객이 천천히 사라 곁으로 가서 왼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불청객의 얼굴이 사라의 놀람과 분노로 가득한 검은 눈동자에 맺혔다.

"다…… 당신은?"

불청객이 가만히 손수건을 꺼내 사라의 입을 막았다. 사자머리를 휘저었지만 사라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또각또각!

반인반수족이 발굽 소리를 내며 대기실로 들어왔다. 불청객은 사라를 가볍게 안아 들고 반인반수족의 등에 실었다. 그녀의 두 손이 바닥에 닿을 만큼 축 늘어졌다. 불청객도 원숭이처럼 가볍게 튀어 반인반수족의 등에 붙었다.

그들은 뒷문으로 나오자마자, 대기해 둔 트럭에 올라탔다.

건물을 빠져나간 트럭을 노란 스포츠카 하나가 따라붙었다. 운전석에 앉은 이는 단발머리 남 앨리스 형사였다.

072025|박선희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