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 개봉한 영화 ‘차우’는 사람을 무차별 공격하는 식인 멧돼지를 다룬다. 영화 제목인 ‘차우’는 이 멧돼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차우는 돌연변이로 염기서열이 바뀌어 거대한 몸집과 식인 성향을 갖게 된 것으로 나온다. 사진 제공 빅하우스㈜벤티지홀딩스
영화 ‘차우’ 괴물 멧돼지 등장
난폭한 성격으로 사람들 공격
몸무게 1.5t 코뿔소만한 덩치?
“과학적으론 불가능한 이야기”
“요즘 세상에 사람 잡아먹는 짐승이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달 15일 개봉한 영화 ‘차우’에는 김 순경(엄태웅 분)의 이 같은 믿음을 깨고 인간을 공격하는 식인 멧돼지가 등장한다.
‘차우’는 영화에 등장하는 식인 멧돼지의 이름이다. 10년째 범죄 하나 없이 평화롭던 지리산 자락의 산골 마을은 차우로 인해 쑥대밭이 된다. 난폭하고 저돌적인 ‘괴물 멧돼지’가 현실에도 나타날 수 있을까.
○코뿔소만 한 덩치… 유전자 조작으론 불가능
차우는 엄청난 크기의 멧돼지다. 몸 길이 3.5m에 몸무게는 1.5t이나 된다. 일반 멧돼지가 몸길이 1∼2m, 몸무게 150kg 안팎임을 감안하면 차우는 다 자란 보통 멧돼지의 10배에 이른다. 덩치로만 보면 코뿔소나 하마에 가깝다.
차우가 이렇게 몸집이 커진 이유는 뭘까. 영화는 돌연변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돌연변이는 유전자(DNA)의 구조가 변하거나 염색체에 이상이 생긴 경우를 가리킨다. X선, 자외선, α선, β선 등을 쬐거나 과산화수소, 독가스(머스터드가스)에 노출되면 돌연변이가 나타날 수 있다.
영화에서 동물생태연구가로 등장하는 변수련(정유미 분)은 “학명이 ‘홀로코러스마이너 차게니’라는 미확인 외래종 멧돼지가 있는데 염기서열이 바뀌어 식인 성향을 갖게 되기도 한다”며 “차우가 그 종자인 것 같다”는 그럴싸한 이론을 내놓는다.
이에 대해 서울대 수의대 이항 교수(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는 “돌연변이만으로 거대한 몸집의 멧돼지가 나오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몸 길이, 몸무게 등 생김새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수백∼수천 개에 이르기 때문에 이들이 한꺼번에 발현될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것.
멧돼지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차우를 만드는 일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이 교수는 “여러 유전자를 한꺼번에 조작해 원하는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기술은 아직 없다”면서 “유전자 조작 오류로 거대 멧돼지가 나올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난폭한 성격…알고 보면 수줍음 많고 온순해
차우는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성격까지 난폭하다. 이빨을 드러낸 채 마을사람을 향해 미친 듯 달려오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다. 차우는 최대 시속 84km로 달릴 수 있는데, 이런 차우에게 들이받히기라도 한다면 시속 84km로 달리는 중형차에 부딪힐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는다. 영화 막바지 차우에게 주인공들이 일방적으로 쫓기는 장면은 차우의 난폭함을 가장 잘 드러낸다.
하지만 차우의 거친 성격은 영화의 설정일 뿐 사실 멧돼지는 천성이 온순한 동물이다. 15년 이상 현장을 누비며 야생동물을 연구해 온 야생동물 전문가 최현명 씨는 “열 차례 이상 멧돼지와 맞닥뜨렸지만 매번 멧돼지가 먼저 등을 돌려 달아났다”면서 “만약 멧돼지가 영화 ‘차우’를 봤다면 억울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수줍음을 많이 타고 예민한 성격 때문에 다큐멘터리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살쾡이나 너구리보다 멧돼지 찍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최 씨는 “차우의 식인 성향도 일반 멧돼지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멧돼지는 노루나 토끼를 먹잇감으로 사냥하지 않기 때문에 생태계에서 포식자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멧돼지가 가끔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 밭을 습격해 농가에 피해를 입히는데, 이는 고구마 같은 전분질 작물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멧돼지가 유해동물로 지정된 이유는 시골 농가에 경제적인 피해를 입히기 때문일 뿐 인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