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의 지정판매 체인점 ‘아리따움’. 동아일보 자료 사진
늘 쓰던 화장품이 다 떨어진 것을 갑자기 깨달았을 땐 동네 화장품 가게가 최고다. 백화점은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다. 동네 화장품 가게라면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가도 좋고 가게 주인과 평소 잘 알고 지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때로는 단점도 있다. 가게 주인이 "(어디 뒀는지 모르니) 제품을 잠시 찾아야한다"고 말하거나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구석에 놓인 제품에 눈길이 가면 슬그머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아모레퍼시픽이 겨냥한 것은 바로 이런 시장이다. 동네 화장품 가게처럼 친숙하면서도 믿을만한 상품을 파는 가게.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샵 '아리따움'은 백화점과 동네 화장품 가게 사이 틈새를 뚫고 들어갔다.
●친근한 가게, 착한 가격
아리따움은 아모레퍼시픽이 제조·유통하는 제품만 파는 브랜드샵이다. '아이오페' '라네즈' '한율' '마몽드' '해피바스' 등과 20여 종의 향수가 주요 상품이다.
아리따움은 지난해 9월 1일 1호점을 시작한 후 10개월 만에 '10-10클럽'에 안착했다. '10-10클럽'은 전국 1000개 이상의 매장 네트워크와 월 매출 1억 원 이상 매장 10개, 5000만 원 이상 매장 100개 이상을 달성했다는 의미로,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성공의 척도가 되는 말이다.
'레드오션(포화 시장)'이 된 화장품 브랜드샵 시장에서 단기간에 이 같은 성과를 일궈낸 비결은 뭘까. 크게 세 가지다. △동네 화장품 가게의 친근함 △아무리 비싸도 20만 원을 넘지 않는 '착한 가격' △믿음직한 상담과 고객관리 등이다. 황동희 아모레퍼시픽 시판부문 팀장은 "믿을만한 상품을 믿을만한 가게에서 믿을만한 사람에게 구입하도록 한다는 것이 전략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사전 작업만 7년
동네 화장품 가게의 친근함을 얻는 방법 중 하나는 동네 화장품 가게를 아리따움으로 변신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아리따움은 기존 화장품 가게들을 포섭하는 데 역점을 뒀다.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등 기존 브랜드샵이 새로운 점포를 내는 데 집중한 것과 다르다.
동네 화장품 가게의 특징은 여러 회사 제품을 한꺼번에 판다는 점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자사 제품의 점유율을 조금씩 높여가다 궁극적으로 아모레퍼시픽 제품만 파는 가게로 유도했다.
이 과정은 약 7년 동안의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아리따움의 전신인 '휴플레이스'가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우리 편'이 될 가능성 있어 보이는 동네 화장품 가게를 찾아 휴플레이스 간판을 달아주고, 재고관리 시스템(POS)를 무료로 도입하는 지원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가게 내 아모레퍼시픽의 점유율을 높여갔다. 6년이 지나자 약 950여 개의 휴플레이스가 생겼다.
●점주 찾아 삼고초려
두 번째 단계에 착수할 시기가 왔다. 여러 회사 제품을 파는 휴플레이스를 100% 자사 제품만 판매하는 브랜드샵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점주들을 설득해야 했다. 점주들은 "한 회사 제품만 팔다보면 매출이 떨어진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모레 제품은 아리따움에서만 살 수 있게 하겠다', '아이오페 레티놀NX도 아리따움에서만 살 수 있게 하겠다'고 해도 망설였다. '아이오페 레티놀NX'는 '설화수 윤조에센스'와 함께 아모레퍼시픽의 양 대 대표 상품이다.
본보기가 필요했다. 두 군데 가게를 골라 '파일롯 매장'으로 삼았다. 서울 은평구 로데오 거리와 경기도 평택 중심가에 있는 가게였다. 다른 회사 제품은 다 빼고 아모레퍼시픽 제품만 팔게 했다. 인테리어와 진열방식을 바꾸고 단골 관리에 들어가니 3,4개월 후 매출이 오히려 10% 가량 높아졌다. 서울 삼성동 COEX몰 내 휴플레이스 점주는 이민전 시판부문 부사장이 직접 점주의 고향까지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다. 6월 말 기준 950여 개의 휴플레이스 중 800여 개가 아리따움으로 전환했다. 지난 5월 실적 집계 결과 각 매장은 휴플레이스 시절보다 매출이 15% 정도 늘어났다고 보고했다.
●'결정적 1m'의 힘
또 다른 성공 포인트는 가게 직원들을 전문 상담가로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화장품 판매는 상담이 중요하다. 화장품 가게를 찾는 소비자들은 누구나 피부에 한 두 개 씩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
이에 화장품 회사로는 처음으로 파트너 회사를 설립해 전국 판매점에 산재돼 있는 판매 사원들을 파트너 회사에 소속시키고 교육하는 한편 4대 보험과 퇴직금 등의 근무조건을 제시했다. 이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황동희 시판전략팀장은 "매장 정보와 노하우를 빼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 직원들을 다 빼내 직영으로 가려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는 점주가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 교육과 역량 강화는 신규 고객 수 증가, 고정 고객 확대로 이어졌다.
7월 중순 현재 아리따움 지점 수는 총 1020개다. 올해 말에는 1200여 개까지 무난히 확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민전 부사장은 "승패를 구별 짓는 것은 고객과의 거리 1m"라며 "집에서부터의 거리 이외에도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얼마나 많이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김현지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