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왼쪽)가 27일 대전 중구 대전시당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세종시법이 통과될 때까지 대국민 홍보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전=연합뉴스
혁신도시도 진통… 이전 승인 공공기관 대부분 땅 매입조차 안해
○공공기관 “이전 비효율”
기관 통폐합으로 사정 복잡
“2012년까지 옮기면 된다”
정부서도 별도 제재 없어
○해당지역 “언제 오려나”
이미 수천억원 토지보상
“이전 예정대로 안 되면
집단행동 나설 수밖에…”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와 공공기관 지방 이전 프로젝트는 노무현 정부가 국토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겠다며 내건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이다. 하지만 세종시법이 표류하는 데다 공공기관들도 지방 이전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어 양대 대규모 국책 프로젝트가 제대로 성사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실제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124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혁신도시 건설은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이전 계획을 승인 받은 69개 공공기관은 사업 실행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전 작업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정부가 혁신도시 건설과 별도로 공공기관 통폐합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어 지방 이전 구도 자체가 상당부분 헝클어진 상태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이 옮겨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만 점차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 공공기관들 “옮기긴 옮겨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2003년 6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보내는 방침을 발표하고 이듬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한 뒤 2005년 6월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을 확정했다.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해 거점별로 10개의 혁신도시를 만들고 서울에서 옮겨오는 공공기관 본사를 이곳에 입주시킨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혁신도시에 대한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우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방 이전을 독려하지 않고 있다. 공기업들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지방 이전의 비효율성을 공공연히 강조하고 있다.
김쌍수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1월 말 기자간담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과천청사에서 회의를 하는데 본사를 전남 나주시로 옮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한국관광공사는 본사 인력 431명 중 400명을 2012년까지 강원 원주시로 보내기로 돼 있다. 관광공사 측은 올 3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75%가 서울을 찾고 △인천공항과 가까워야 외국인과의 교류를 늘릴 수 있다는 논리로 90여 명의 서울 잔류를 국토해양부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이전 계획을 승인 받은 69개 기관 가운데 용지 매입 등 이전 작업에 구체적으로 들어간 곳은 거의 없다. 한국가스공사는 2007년 말에 이전 승인을 받았지만 여전히 대구의 땅을 사기 위해 시세를 파악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도 ‘2012년까지만 옮기면 된다’며 별도로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 해당 시도는 ‘유령도시’ 우려
공공기관들이 혁신도시 이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수천억 원을 들여 토지보상비를 지급한 마당에 공공기관들이 옮겨오지 않으면 유령도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주 전남 혁신도시를 담당하는 나주시청 관계자는 “아직까지 이전 대상 용지를 매입한 공공기관이 하나도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충북 혁신도시를 담당하는 음성군 관계자는 “원래 30% 이상 진행이 됐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공정이 고작 2%에 불과하다”며 “이대로라면 2012년까지 완공하기 힘들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자문기구인 지역발전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공공기관만 들어서서는 면적의 20%도 채우기 어렵다”며 “기업들이 옮겨와야 하는데 대부분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 공공기관 통폐합으로 더 꼬여
혁신도시 조성 계획은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으로 상당수 공공기관들이 통폐합 대상에 오르면서 사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충북 혁신도시는 이전하기로 했던 12개 기관 중 한국노동교육원이 폐지됐다.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은 통합 대상기관으로 선정돼 충북으로의 이전 여부가 불투명하다.
충북혁신도시추진협의회 관계자는 “폐지나 통합이 예정된 기관 3곳의 인원을 더하면 충북으로 옮겨오기로 한 예상 인원의 16%에 이른다”며 “통합기관이 충북으로 오지 않으면 집단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를 각각 받아들이기로 했던 경남 진주시와 전북 전주시는 양 기관 통합이 결정되자 통합 본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세종시법 與-선진 합의하자 이번엔 민주서 틀어▼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은 지난 임시국회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설치법(세종시법)을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는 일단 28일 3당 간사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론은 쉽게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쟁점은 세종시의 관할구역과 시행 시기이다. 한나라당과 선진당은 충북 청원군 내 2개 면 11개 리(里)를 세종시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지역에서 반대 여론이 심하다며 주민들의 의견을 다시 수렴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시행 시기에 대해서도 한나라당과 선진당은 내년 7월 1일을 주장하고 있으나 민주당은 2011년 말까지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세종시 건설 문제는 여야의 정쟁으로 적잖이 논란을 빚었다. 4월경 여권 일각에서 세종시 계획을 백지화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민주당과 선진당은 강력 반발했다. 민주당은 당초 세종시 구상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이 지역에 기반이 있는 선진당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디어관계법에 이어 세종시법 처리에 대해서도 한나라당과 선진당의 공조가 이뤄지자 발을 빼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으로도 세종시 건설은 3당 간의 ‘힘겨루기’ 속에 떠밀려 다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청와대는 세종시 건설이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만큼 차질 없이 이행해야 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부 부처와 배후 주거·상업시설로 구성된 현재의 도시계획으로는 당초 의도한 ‘2030년 인구 50만 명’ 목표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개발계획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세종시법이 처리되든 지연되든 세종시의 내용과는 상관이 없다”며 “중요한 건 세종시가 자족도시로 기능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이를 위해 대기업 유치 등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재입주도 못하고 거리에 나앉으란 말이냐”▼
■ 세종시법 표류에 해당지역 주민 울분
27일 행정도시 중앙행정타운이 들어설 충남 연기군 남면 종촌리. 평탄 작업과 도로 개설, 상수도 시설 설치 등의 용지 조성 공사가 50%가량 진행 중이다. 행정기관 가운데 총리실 건물(4층)은 파워크레인이 동원돼 기초공사도 시작됐다.
행정도시건설청에 따르면 2007년 7월 착공식 이후 지난달 말까지 각종 설계와 공사 등에 총 2조5406억 원이 투입됐다. 이에 앞서 토지 및 건물 보상비는 총 4조6947억 원이 풀렸다.
건설청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 정부, 토지공사, 주택공사의 신규사업 23건(2조1963억 원)이 착공되면 연말까지 총발주 사업비는 4조7369억 원에 이른다”며 “건설사업이 본격화되면 지역은 물론 전국의 경기 활성화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종시법 통과는 물론 이전 행정기관의 변경고시가 1년째 표류하면서 정치 상황에 민감한 건설사들은 좌고우면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최근 임시국회에서 세종시법이 통과되지 않자 “재입주도 못하고 거리에 나앉으란 말이냐”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 여당이 행정도시 문제를 지연시키다가 해결해 주고 대신 충청권의 숙원인 과학비즈니스벨트나 첨단복합산업단지를 다른 지역에 넘기려는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조선평 행정도시사수대책위원장(연기군 의원)은 “세종시법이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겼더니 결국 무산됐다”며 “주민 여론이 이만저만 나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30일 조치원읍 연기군민회관에서 군민 4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종시특별법 조기 제정’을 촉구하는 총궐기대회를 연다.
행정도시주민보상대책위 홍석하 기획차장은 “당초 계획보다 1년이 늦춰져 2011년까지 지자체(세종시)가 발족하고 원주민들이 재입주할 예정이었으나 법안 통과가 안 돼 또다시 1년 이상 더 지연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역경제가 급랭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기=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