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1인분’ 소비자 골탕
음식점 73% “표준화 필요”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사는 주부 김모 씨(52)는 최근 단골 고깃집을 다녀와서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단골이라 늘 익숙한 메뉴판의 ‘삼겹살 1인분 180g’ 표기가 ‘150g’으로 슬그머니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김 씨는 “가격은 그대로 두고 1인분 양을 줄이면 소비자에게는 사실상 가격을 올려 받는 셈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
하지만 1인분의 양이 갑자기 줄었다고 해서 김 씨가 고깃집에 항의할 만한 마땅한 근거는 없다. 현재 국가가 정한 1인분의 적정량, 즉 표준이 없기 때문이다.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음식점은 가게 안이나 밖에 ‘1인분 ○○g당 ○○○원’이라고 표시하고, 판매하면 그만이다.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것이 ‘1인분’인데, 1인분의 양 표시는 ‘고무줄’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 잃어버린 1인분
실제 전국 고깃집을 조사해본 결과 ‘1인분’은 같은 종류의 고기라도 식당마다 천차만별이었다. 한국인이 특히 즐겨 먹는 삼겹살만 해도 1인분의 분량이 고깃집에 따라 최소 100g에서 최대 450g까지 차이가 4.5배에 이르렀다.
동아일보가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과 함께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고깃집 300곳을 조사한 결과, 돼지고기 중 삼겹살은 1인분 분량이 200∼300g인 곳이 전체의 63.0%로 가장 많았다. 150∼200g인 곳도 29.0%나 됐다. 150g 미만인 곳은 7.0%였으며 300g 이상인 곳은 1.0%였다. 불고기는 1인분 분량의 편차가 더 심했다. 200∼300g인 곳이 42.1%였고 150∼200g인 곳이 26.3%, 300g 이상인 곳이 21.1%, 150g 미만인 곳이 10.5%였다.
그렇다면 제각각인 1인분 분량에 대한 가격은 어떻게 정하고 있을까. 1인분 가격 결정의 주요 변수는 ‘주변 경쟁 식당 눈치 보기’였다. 조사 대상 전국 음식점 300곳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9.0%가 ‘같은 메뉴를 파는 주변 식당과 비슷한 수준으로 결정한다’고 답했다. 13.3%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주변 식당 가격과 일부러 다르게 결정한다’고 했다. 일반적인 가격 결정 방법인 ‘필요한 경비와 이윤을 고려해 결정한다’는 답은 35.0%에 그쳤다. 1인분 개념은 임의대로 조절해 쓸 수 있는 마케팅 수단인 셈이다.
고깃집들은 메뉴판에 명시한 1인분 분량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시민모임(이하 소시모) 안산지부가 지난해 안산지역 30개 음식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57%가 약속한 분량을 지키지 않았다.
○ 1인분 표준화 목소리 커진다
소비자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음식물 쓰레기 분량 감소 △적절한 음식물 섭취에 따른 성인병 예방 △음식점 거래의 투명성 제고 등을 위해 1인분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소비자들이 먹는 양을 예측하고, 이를 통한 합리적인 지출을 위해서라도 시급하다는 주문이다. 김자혜 소시모 사무총장은 “1인분 분량을 명확히 정해놓으면 소비자가 소량을 적당히 시킬 수 있어 음식물 쓰레기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푸짐함’을 미덕으로 보는 음식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혜경 식품의약품안전청 영양정책과장은 “1인분의 적정량에 대해 ‘야박하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소비자도 일부 있을 것”이라며 “그러면 남더라도 푸짐하게 내놓을 수밖에 없는 식당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인분 표준화는 소비자에게 올바른 소비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길이기도 하다. 같은 분량에 대해 가격을 제대로 비교할 수 있기 때문. 비만을 막기 위해 1인분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형미 세브란스병원 영양팀장은 “음식점별로 1인분 분량은 물론 열량을 표기하도록 권장해야 소비자의 건강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규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법한 음식점 주인들도 1인분 표준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조사에서 조사 대상 음식점의 73.3%가 1인분 분량 표준화를 지지했다.
반면 현실적으로 1인분의 분량을 획일적으로 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사람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양이 제각각이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음식업중앙회 관계자는 “물이 섞인 음식 등 음식 특성이 다양해 분량 표준화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김가영 인턴기자 건국대 전자공학부 4학년
이한샘 인턴기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