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다문화교육이 교과 학습 주제로 포함돼 초등학교 중학교 등에서도 사회 도덕 영어 교과 시간에 다문화 공부를 하게 된다. 광주 광산구의 다문화 대안학교인 새날학교에서 여름 야외수업을 하고 있는 다문화 어린이와 청소년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백인-서구문화 편중… ‘더불어’가 빠진 교과서
《‘필리핀에서 온 영어 선생님’, ‘캄보디아에서 온 회사 직원’…. 최근 교육과학기술부 교과서 검정을 통과해 내년부터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사용하게 될 금성출판사의 생활국어교과서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국어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등장인물이다. 내년부터 쓰게 될 1학년 국어교과서에는 한국인의 피부색을 ‘살색’이라고 하는 대신에 ‘살구색’으로 바꿔달라는 한 학생의 글이 등장한다. 또 삼각형의 피라미드족과 사각형의 큐브족이 서로 이해하면서 평화를 찾았다는 내용의 만화가 실리기도 했다.》
고교영어 백인 36% 등장… 흑인은 4.2% 불과
지나친 한국 문화 우수성 강조… 타국 폄훼도
“다문화 교육용 자료 담은 부록 교과서 필요”
2007년 2월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 개정안’에는 ‘다문화 교육’이 범교과적 학습 주제로 포함됐다. 국내 다문화가정은 2006년 9389명에서 2008년 2만180명으로 급증했다. 더는 단일민족을 강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과서에 다문화교육이 포함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전까지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다문화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외국인 밀집지역인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보광초등학교는 다문화 교육을 발 빠르게 시행한 곳이다. 하지만 일반 교과서에는 다문화교육을 위한 내용이 없어 교사들이 직접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진연 보광초등학교 교감은 “다문화가정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텐데 현장에서 쓸 교과서가 없다”며 “다문화 교육용 자료를 담은 부록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음악도 유럽곡이 77.7%
지금까지 교과서는 백인, 서구문화에 편중돼 있었다. 2002년부터 사용된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영어교과서 8종을 분석한 결과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백인 비율이 특히 높았다. 백인이 전체 인물 가운데 36%를 차지한 반면 흑인은 4.2%에 불과했다. 어떤 교과서는 백인과 한국인만 등장하고 흑인은 아예 등장하지 않기도 했다. 미국 내 3위의 인종 분포를 보이고 있는 히스패닉계는 우리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음악교과서에도 서구문화 편중이 뚜렷했다. 5개 고등학교 음악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국악곡을 제외한 외국곡 가운데 77.7%가 유럽의 곡이었으며 아프리카는 0.8%, 아시아는 2.4%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음악교육이 서양음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다문화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이 교과서를 통해 소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문화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과목은 사회·도덕과목이다. 그러나 교과서 곳곳에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한 나머지 다른 나라의 문화를 폄훼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박철희 경인교대 교수는 ‘다문화교육의 관점에 기초한 초등 사회, 도덕교과서 내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 논문에서 도덕 4학년 2학기 교과서에는 김치에 대해 한 외국인이 기자와 대화하는 장면을 지적했다. 기자가 “한국에서 온 기자인데 김치를 평소에 자주 드시나요”라고 묻자 외국인은 “네, 한국 김치는 너무 맛있어요. 일본 기무치와는 비교도 안 되지요”라고 답한다. 또 “한반도는 주변 국가들이 끈질기게 침략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한반도에 한민족이 아닌 일본, 또는 다른 민족이 있었다면 벌써 망했을 것”이라는 구절도 등장한다. 박 교수는 “특히 일본에 대한 교과서 서술은 다문화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문제를 제기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 다문화교육은 다양한 문화 즐기는 것
교과부는 다문화교육 내용이 포함된 개정 7차 교육과정 교과서를 올해부터 도입하고 있다. 내년에는 새로운 중학교 1학년 교과서가 도입되고 2011년에는 중2와 고1에 개정 교과서가 도입돼 2013년까지 전 학년이 개정 교과서를 쓰게 된다.
이혜진 교과부 교육복지정책과 사무관은 “현재 각 출판사 집필진이 교과서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며 “가능한 한 다문화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올해 말까지 기존 교과서의 다문화 내용을 분석한 후 앞으로 개정될 교과서에 반영할 계획이다.
윤희원 중앙다문화교육센터 소장(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은 “다문화교육은 다양한 문화를 즐기게 해주는 것”이라며 “문화적 차이가 의사소통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문화를 이해해주자는 식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과서 속 내용에 다문화적 관점을 자연스럽게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