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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돈 벌어 갚는 학자금

입력 | 2009-08-01 02:57:00


영화 ‘21’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수학천재들이 ‘카드 카운팅’이란 수법으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 앞부분에서 주인공인 벤 켐블은 로빈슨 장학금을 받기 위해 교수와 면담을 한다.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그는 장학금이 없으면 학교를 계속 다니기 어려운 형편이다. 장학금을 애걸하는 켐블에게 교수는 말한다. “작년에 로빈슨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한국 이민자인데 한쪽 다리가 없었지. 자네도 다리 하나를 자를 텐가?” 미국 대학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아시아계 학생들이 장학금까지 차지하는 단면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 대학의 등록금은 매우 비싼 편이다. 한국 대학생들이 ‘연간 등록금 1000만 원 시대’라며 집단시위까지 하지만 미국 사립대의 연간 등록금은 4만∼5만 달러(약 5000만∼6250만 원)에 이른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학생의 56%가 학자금 대출에 의존한다. 대학 중퇴나 사회에서의 낙오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도 수십만 명에 이르러 정부 재정에 부담을 안긴다.

▷학창 시절 학자금을 빌리고 취업 후 소득이 일정 수준이 되면 갚아나가는 새로운 학자금 대출제도가 내년에 도입된다. 이 제도 채택에 앞장섰던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대학 등록금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재학 중에는 이자도 안 붙는다. 연 200만 원까지 생활비 대출도 받을 수 있으니 희소식이 틀림없다. 소득이 낮은 가정의 학생들이 대상이므로 교육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연평균 1조5000억 원에 이르는 재원을 정부가 채권 발행을 통해 마련한다고 하니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대학 무상교육을 실시했던 나라들이 유상교육으로 전환하면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한 제도를 모델로 삼았다. 대학 진학률이 83%나 되는 상황에서 높은 등록금 문제에 나라가 모른 척할 수 없는 사정이 이해되지만 심각한 청년실업을 생각할 때 대출금 회수가 우려되기도 한다. 정부가 “가난해서 공부 못했다”는 소리가 더는 안 나오게 하겠다며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한 만큼 대출금을 잘 갚는 것은 국민과 후배들에 대한 수혜자들의 의무일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