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명 포털 사이트 최고경영자(CEO)를 맡기도 했던 인터넷기업 대표가 TV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비판하는 책을 번역해 눈길을 끌고 있다.
웹 서비스 업체인 웹스테이지 홍윤선 대표(47).
그는 1985년에 출간된 닐 포스트먼의 매체 비평서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를 최근 번역 출간했다.
이 책은 20세기에 출간됐지만 21세기의 뉴미디어 시대를 예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대중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점은 주로 TV에 맞춰져 있다.
시청률에 목매는 TV방송은 어떻게 해서든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둬야 하기 때문에 논리나 이성보다는 감성과 선정성에 의존한다는 게 주 내용. 책에 따르면 오락프로뿐 아니라 뉴스, 드라마, 다큐멘터리, 심층취재, 시사토론까지 모든 TV프로그램의 본질은 '오락'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TV에 익숙해진 시청자는 자신도 모르게 판단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논리적 사고기능도 마비되며,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지만 얼굴은 늘 웃고 있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책에 대해 "1985년에 쓰였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뉴미디어의 폐해를 정확히 지적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나아가 "포스트먼이 지적한 것은 주로 TV이지만 책의 내용은 뉴미디어인 인터넷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의 포털 사이트들 역시 방문자수와 페이지뷰 경쟁을 벌이면서 급속도로 오락화하고 있으며, 인터넷에 익숙해지는 누리꾼 역시 사고가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홍 대표의 주장이다.
홍 대표는 특히 각 매체들이 오락성을 도구로 사고(思考)를 마비시키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가진 '편향성'에 따라 시청자와 누리꾼들을 '세뇌'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가령 TV 시사프로그램에 보도된 내용을 근거로 집단적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사고 기능이 마비된 시청자가 '편향성'에 대해 보이는 반응 중 눈에 띄는 일부"라는 것이다.
뉴미디어로부터 나의 '뇌 기능'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홍 대표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신문과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활자매체에는 논리와 이성이 살아 있다. 각기 시각이 다른 신문을 두 개 이상 가까이 하고 책을 많이 읽는 게 뉴미디어의 오락성으로부터 자신과 자녀의 사고 기능을 지키는 길이다."
그는 특히 "어려운 책을 독파하는 훈련을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지금 고교 2학년생인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도스토예프스키류의 어려운 문학작품을 독파하도록 훈련했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는 못하더라도 어려운 책을 200쪽, 300쪽씩 읽어나가는 능력을 키워주고 나니까 그 뒤로부터 신문과 책 읽기는 저절로 됐다"고 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CEO 출신의 신문과 책 예찬. 모순이 아닐까.
홍 대표는 "포털 사이트 CEO 시절에는 솔직히 이런 폐해가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포털 사이트를 해 봤기 때문에 나중에 폐해를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런 그는 최근 미디어법 통과로 여론 독과점을 우려하는 일각의 목소리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는 "오락성을 가진 다른 편향성의 채널이 몇 개 더 생기는 것일 뿐"이며 "여론이 다양화 할 수는 있어도 뉴미디어 시대에 여론 독과점이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학교에서 컴퓨터 교육을 없애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컴퓨터는 이미 오락기기가 됐기 때문에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게 된다는 것. 대신 "교과과정에 '미디어 교육'을 넣어서 인터넷과 휴대전화, TV로부터 학생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인터넷 댓글에 대해 '글'을 가장한 '소리'라고 비판했다. "인터넷 댓글에는 논리가 없다. 이성적인 사고 없이 순간의 감정을 별 뜻 없이 말한 것을 문자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내용 없는 댓글'은 인터넷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돼야 한다"며 "포털 사이트들은 논리 정연한 댓글은 펼친 상태로 공개하고, 뜻 없는 댓글은 제목을 클릭해야만 본문을 볼 수 있도록 따로 관리하는 게 좋을 듯하다"고 제안했다.
"책 제목 그대로입니다. 영상 매체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즐거운 일이 많아지죠. 하지만 인간은 매체들이 제공하는 오락성 속에서 내가 왜 즐거운지도 모르는 채 즐겁게 사는 겁니다. 그렇게 웃으며 살다가 의미 없는 소리만 가끔씩 내보고 죽는 것이죠. 이게 행복한 인생일까요?"
글·사진=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