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들 ‘중산층 세금인상’ 시사
백악관 “아니다” 서둘러 진화
쓸 곳은 많은데 재정수입은 적은 한국처럼 미국도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세수 부족 현상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세금 인상 가능성에 대한 미국인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세수 확보 방안을 둘러싼 논쟁도 거세지고 있다.
4일 AP통신에 따르면 올해 미 정부의 세수는 지난해보다 18%가량 감소했다. 이는 연간 감소 폭으로는 대공황 이후 최대다. 개인이 내는 세금은 22%, 기업은 무려 57%나 줄었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의 누적 재정적자는 사상 최대인 1조8000억 달러(약 2196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에 향후 10년간 1조 달러가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적자폭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최근 TV 대담에서 세금 인상 가능성을 시사해 논란을 일으켰다. 연소득 2만5000달러 이하인 가정에 세금을 추가로 부담시키지 않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깰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부분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중산층 세금에 대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확언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백악관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적자를 어디서 확충해 메울지는 답변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가 불황에서 완전히 탈출한 것처럼 (재정지출 축소에) 속도를 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부과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레너드 버먼 미 세금정책센터 이사는 “새 개혁정책에 들어가는 비용을 전부 소득 상위 5%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정책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부자들의 세금 부담에 대한 보수파의 반발이 커지면서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가 중고차 보상 프로그램에 추가로 2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한 것에 대해 “그런 식이면 세금으로 주방용품부터 가구, 옷까지 전부 바꿔주는 게 어떻겠느냐”며 비아냥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