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대표 파견” 지난주 결정
인도적 명분 걸린 문제… 클린턴도 흔쾌히 수락
미국 ‘커런트TV’ 소속 한국계 유나 리, 중국계 로라 링 기자가 3월 17일 두만강 지역에서 북한군에 체포된 뒤 여기자 석방 문제는 미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대 현안이 됐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 사안을 직접 챙기면서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여기자 문제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와 2차 핵실험과 맞물리면서 북-미관계의 변화를 가늠할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에선 여러 외교채널을 가동해 여기자들의 석방을 촉구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자 특사 방북을 통한 해결 모색 방안이 논의됐다. 커런트TV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과 북한 억류자 문제 해결 경험이 있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등이 특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6월 8일 두 여기자를 재판에 부쳐 ‘조선민족 적대죄’와 ‘비법(非法) 국경출입죄’를 적용해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고 발표하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예상 밖의 중형 선고에 대해 조기 석방의 신호라는 해석과 상당 기간 노동을 하는 수감생활이 불가피하다는 해석이 엇갈렸다. 그러나 여기자들은 노동교화소에 배치되지 않고 평양 인근의 초대소에서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북-미 뉴욕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장관이 지난달 20일 언론 인터뷰에서 여기자 석방 문제에 대해 “매우 희망적”이라고 언급한 시점이 물밑접촉을 통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시기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국은 이때부터 북한이 원하는 고위급 인사 파견에 동의하면서 실무적인 절차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북한이 여기자 문제를 북핵 문제를 6자회담 대신 북-미 양자협상으로 몰고 가려는 의지를 보이는 등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조짐이 보임에 따라 미국 정부는 특사 타이틀 대신 민간 자격의 대표를 파견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북한에 보낼 고위급 인사로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현직 상원의원 대신 순수한 민간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 결정했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작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위상뿐 아니라 클린턴 장관의 남편이라는 점에서 북한으로선 환영할 만한 인사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이번 방문지가 북한이라는 점과 여기자 구명이라는 인도적 명분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고려해 흔쾌히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한 것은 이미 미국 정부가 북한과 여기자 석방에 사실상 합의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관리가 억류된 여기자 중 한 명의 가족에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석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이를 전해 들은 백악관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