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면 여자, 남자면 남자…
동성만 등장하는 연극 붐
여자면 여자, 남자면 남자. 이성 배우는 등장하지 않거나 감초 격으로만 등장하는 ‘동성(同性)연극’이 올해 대학로 장기 공연작 중 강세를 보이고 있다.
○ ‘버자이너…’ ‘오월엔…’ 잇단 앙코르 공연
여성 일색의 공연으로는 여배우 셋만 등장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먼저 꼽을 수 있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삼총사 이경미 전수경 최정원 씨가 출연하는 이 작품은 올해 1∼3월 1차 공연을 마치고 7월 말부터 서울 대학로 SM스타홀에서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 여성의 성에 대한 금기를 웃음과 눈물의 토크쇼 형식으로 허물어뜨리는 이 작품은 여성 관객의 열띤 호응에 힘입어 추석 공연도 준비 중이다.
노처녀들의 결혼에 대한 강박관념을 코믹하게 풀어낸 ‘오월엔 결혼할꺼야’는 3명의 여배우와 1명의 ‘멀티맨’이 등장하는 창작연극. 온갖 남성 배역은 1명의 남성배우가 도맡는다. 5, 6월 시즌1 공연을 마친 뒤 역시 7월 초부터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
30일까지 대학로 동숭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창작연극 ‘울다가 웃으면’에도 남자는 멀티맨 1명뿐이다. 39세 중년여성의 애환을 2개의 에피소드로 펼쳐낸 이 작품에서 남자배우는 갖가지 남성 배역을 도맡거나 극 마지막 에필로그에 동영상으로만 등장한다.
남성배우만 등장하는 대표적 작품으로는 남자배우 넷만 출연하는 연극 ‘나쁜 자석’이 있다. 8월 2일까지 시즌1 공연을 마친 이 연극은 7일부터 출연진을 바꿔 시즌2 공연에 돌입한다. 초등학생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네 남자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영국 극작가 더글러스 맥스웰의 원작을 한국의 상황에 맞춰 번안해 젊은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올해 세 차례나 공연된 ‘모범생들’ 역시 4명의 남자배우만 출연한 작품. 학력의 노예가 된 명문고 고교생들이 단체부정행위와 매수,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역시 여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8월 16일까지 3개월간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2관에서 장기 공연 중인 창작연극 ‘환상동화’에도 여배우는 전쟁, 예술, 사랑을 대표하는 세 광대가 공동 창작하는 동화 속 여주인공 한 명뿐이다. 그나마 대사 한 줄 없이 몸짓연기만 펼친다.
○ 인간내면 파고들기에 적합
이 같은 동성연극의 대두는 멜로드라마로 흐르는 것을 막으려는 장르 다변화 욕구와 인간 내면을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가려는 연출 의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 ‘나쁜 자석’을 제작한 악어컴퍼니의 조행덕 대표는 “남녀 배우를 동등하게 등장시키면 아무래도 멜로라인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를 동성배우 위주로 바꾸면 인간 보편의 문제에 더 천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창작뮤지컬에서 감초연기로 각광받던 멀티맨이 연극 장르에서 부각되는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환상동화’를 제작한 이다엔터테인먼트의 손상원 대표는 “다양한 이성 역할을 홀로 도맡는 멀티맨이 각광받게 된 것은 제작비를 줄이면서 극적 재미를 높이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창작뮤지컬에도 확산되고 있다. 9월 27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공연 중인 ‘바람을 불어라’는 군악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10여 명의 출연배우 중 여배우 한 명을 제외하고는 남자배우뿐이다. 15일부터 대학로 SM아트홀에서 공연에 들어가는 뮤지컬 ‘스페셜 레터’ 역시 군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홍일점 한 명만 빼고 나머지 배우 6명은 모두 남자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