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佛콩쿠르 연속 우승… 거장 꿈꾸는 연습벌레
큼직한 귀고리, 가볍게 곱슬거리는 긴 머리, 민소매 니트. 세련된 차림을 한 아가씨의 손에 시선이 멈췄다. 바짝 자른 손톱과 까슬까슬한 손끝, 지문 대신 돌덩이 같은 굳은살…. 하피스트 윤지윤 씨(23·미국 줄리아드음악원)의 손이다.
여섯 살 꼬마는 피아노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재미없다”며 그만뒀다. 엄마 친구(하피스트 유지혜 씨)에게 하프를 배우러 다니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고 엄마에게 달려가 자랑했다. 그는 “친구들이 남자한테는 손 보여주지 말라고 한다”면서 깔깔 웃었다.
그는 지난달 중순 세계적인 지휘자 로린 마젤 씨가 미국 버지니아 주 개인 농장에서 연 ‘캐슬턴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카타르 내셔널 필하모니의 하프 주자로 참여해 벤저민 브리튼의 오페라 곡을 함께 연주했다.
“오케스트라에서 하프는 소리나 영향력이 두드러지는 악기가 아닌데도 마젤 선생님께서 ‘연주 좋았어’ ‘무슨 곡이든 다 연주하겠는걸’이라고 칭찬해주셔서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페스티벌이 끝난 뒤 귀국해 지난달 30일에는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의 ‘하프 소나타’, 프란츠 리스트의 ‘콘서트 에튀드 3번’에서는 서정과 부드러움을, 마르셀 투르니에의 ‘이미지’ 중 ‘무지크의 춤’, 앙리에트 르니에의 ‘레전드’에서는 ‘힘’을 강조했다.
‘레전드’는 그에게 뜻깊은 곡이다. 2000년 예원학교를 다니다 미국 유학을 떠나 처음으로 연습한 곡이기 때문이다. ‘하프계의 거장’ 수전 맥도널드 인디애나주립대 교수는 자신의 스승이 쓴 이 곡을 중학생에게 연습하라고 했다. “어려운 대작을 반복 연습하느라 낯선 유학생활의 외로움이나 어려움을 느낄 새가 없었어요. 이 곡을 연주할 때면 맥도널드 선생님의 길을 뒤따라 걷는 느낌이 듭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 소카국제하프콩쿠르(2000년)와 프랑스 릴리라스킨국제하프콩쿠르(2002년)에서 잇따라 우승했다. 성인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릴리라스킨콩쿠르 우승의 부상으로 이듬해 첫 음반을 냈고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데뷔 무대도 열었다.
“어릴 때 잘하다가 자라면서 인정을 못 받고 ‘영재의 틀’에 갇히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어요. 프랑스 하피스트 이사벨 패랭 씨는 제게 ‘멘터’ 같은 분인데, 그분의 조언에 큰 힘을 얻었지요.” 패랭 씨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삶의 경험이 묻어나는 연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독한 연습도 필요하지만 연애도 하고 작곡가의 삶도 파헤쳐보면서 내면의 원숙미를 길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연주할 때 이 일이 숙명임을 느낀다”는 이 하피스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예쁘게 하프 연주하다가 시집 잘 가라”는 거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