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은 신의 은총
이런 가정을 해보자. 먼 우주의 어느 별로 편도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여행은 아주 오래 걸리며, 우주선에서는 오직 혼자라고 해두자. 그리고 목적지인 그 별에 도착하기까지 그 누구와도 통신할 수 없고, 오로지 별빛만을 길의 지도로 삼아 고독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대는 그 우주선에 무엇을 싣고 떠나겠는가. 어쩌면 이 질문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인간이여, 그대는 무엇으로 영혼의 벗을 삼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될 수도 있다.
물론 우주선의 부피 제한으로 인해 많은 것을 가져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렇다. 난 사춘기 시절 이후 이런 공상에 빠질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난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 우주선에 실을 만한 몇 가지를 찾아냈다.
코플스턴이나 라다크리슈난의 철학사 전집, 바흐의 오르간 작품집이나 황병기의 가야금 산조 CD. 더불어 오동나무 바둑판과 관자보나 현현기경 따위의 기보집. 물론 취향에 따라 여러 종교 경전이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싣고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타르콥스키나 심슨 가족 DVD 컬렉션을 잊지 않겠다. 그리고 고흐.
그렇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고흐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년)이다. 별들이 따뜻한 순금 빛으로 그려져 있다면 복제화라도 관계없다. 그림 소장자가 큰 인심을 써서 오리지널을 준다면 감사의 말이야 전하겠지만, 지구의 다음 세대들을 생각해서라도 어렵사리 사절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 오리지널을 감상할 기회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에게도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주선에 있으면 별들은 질리도록 볼 수 있는데 웬 별 그림이냐고 말하지 말자. 론 강을 따뜻하게 데우는 별빛은 인간의 영혼을 덥히는 신의 은총인 것이며, 그 강가에 찰랑거리는 가스등의 빛 물결은 곧 지구에 대한 애틋한 추억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결심한다. 우주선에 단 하나의 물건만 실으라고 한다면, 난 기어코 고흐를 선택하겠노라고.
그렇다. 훗날 지구에서의 삶을 마감할 날이 분명히 올 터인데 그때 영혼만 남아 별까지 날아간다면, 내가 택하고 싶은 단 하나의 것은 고흐의 그림에서처럼 죽어서도 간직할 지구에 대한 순금 빛 추억인 것이다. 그리고 별은 그 때까지 지상의 영혼들을 덥힌다.
조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