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사랑’ 손문익, 그림 제공 포털아트
매일 오전 6시 잠에서 깨자마자 호수공원으로 갑니다. 2시간 정도 걷고 뛰고 산책하며 새로운 하루를 준비합니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어제와 다른 하루, 새로운 인생의 하루를 위해 활기찬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10년 넘게 아침운동을 하다 보니 눈에 익은 얼굴도 많습니다. 맨발정원에 들를 때마다 항상 마주치던 팔순의 ‘굿모닝 할아버지’도 그중의 한 분입니다. 할아버지는 항상 자전거를 타고 와 맨발로 지압코스를 천천히 돌며 만나는 사람마다 “굿모닝! 굿모닝!” 하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합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결코 굿모닝이라고 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해 들었습니다.
굿모닝 할아버지는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신 분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아침형 인생을 체득해 평생 그것을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굿모닝 할아버지가 삶에서 얻은 최상의 보람은 평생 좋은 아침을 지속했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곧 인생이고 인생이 곧 하루라는 게 할아버지의 인생관입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도 밝은 아침의 기운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이없게도 아침을 거부하고 빛을 거부하는 70대 중반의 동생이 할아버지에게 등짐처럼 얹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뒤늦게 배운 인터넷에 중독되어 밤과 낮을 바꿔 산다고 했습니다. 밤새도록 온갖 사이트를 돌며 욕설과 비방 등의 악성 댓글을 다는 게 동생의 주된 일이라고 했습니다. 신경정신과 상담까지 받고 좋은 아침을 선사하기 위해 할아버지는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동생은 끝내 박쥐 생활을 청산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젊은 날의 불성실을 세상에 대한 증오와 미움으로 바꿔 두 눈을 치뜨고 밤을 지새우는 동생의 삶이 지옥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며 할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놈에게 좋은 아침을 선사할 수만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굿모닝 할아버지는 이제 좋은 아침을 맞이하러 호수공원으로 오지 않습니다. 작년 가을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아 병이라도 난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반년이 훌쩍 지나도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좋은 아침의 이면은 나에게 깊은 인상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서 나이가 들면 자연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는 말씀, 자연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세상만사가 다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씀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인생의 고통이 모두 부자연스러운 인간 행동의 결과라는 말씀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배운 인터넷으로 밤을 지새우며 악성 댓글을 단다는 굿모닝 할아버지의 동생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그를 밝은 세상, 좋은 아침으로 인도하지 못한 형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 채 지금도 악성 댓글을 다는 취미로 날밤을 지새울까요. 굿모닝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가르친 점은 뿌린 대로 자라고 키운 대로 거두는 자연의 순리입니다. 모든 것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이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좋은 아침입니다. 나의 좋은 아침은 지금 어디에 방치되어 있는지, 한번쯤 살펴봐야 할 시간입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