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6호에 이어진다. 樊遲(번지)가 덕을 높이고 마음 깊은 곳에 숨은 악의 뿌리를 제거하며 마음속 의혹을 밝히는 자기 계발의 방법에 대해 여쭙자, 공자는 앞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직접 방법을 일러줬다. 곧 强恕(강서)같이 남이 하기 어려운 일에 힘쓰고 보답을 얻으려 하지 않는 先事後得(선사후득)이 崇德(숭덕)이고 자기 마음속에 깃든 악의 뿌리를 다스리는 攻其惡이 脩慝(수특)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속 의혹을 밝히는 辨惑(변혹)의 문제는 방법을 정면으로 말하지 않고 질문자의 迷惑을 드러내 보여주듯 말했다. 病根(병근)을 알면 스스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북돋아준 것이다.
一朝之忿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일으키는 분노다. 一朝는 하루 중의 짧은 시간인데 흔히 아주 짧은 시간을 나타낸다. 忘其身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려 일생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림이다. 以及其親은 재앙을 肉親에게까지 미침이다. 非惑與는 ‘惑이 아니겠는가’라고 反問하는 표현이다.
번지는 농사짓는 법과 채전 가꾸는 법을 배우려고 했는데, 그렇다고 거칠고 비루하지는 않았으며 다만 俊敏(준민)하지 못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화를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었던 듯하다. 공자는 돌연히 화를 내어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다가는 화가 부모에게까지 미칠 수 있으므로 늘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지적했다. 젊은 사람이 죽음의 문제, 우주의 진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몸을 상할 정도로 고뇌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옳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고뇌도 고민도 없이 하루아침의 분노 때문에 몸을 망치는 젊은이가 우리 시대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아, 그런 사람의 迷惑을 공자는 어떻다고 말하랴!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