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스쿨은 제3세계 공무원들의 최고 유학코스로 손꼽혔다.
역사와 전통의 KDI스쿨의 MBA과정 포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KDI MBA스쿨 왜 없어지나?
복수학위 협력대학 30개(1위), 교수들의 비즈니스 경험 28.6년(3위), 학생 중 기업 장학생(59.4%, 3위) 직장 경력자(90%, 3위), 학비 2800만원(1위, 가장 싸다는 뜻)….(2008년 한 중앙언론사 조사 결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산하 경영학 전공(MBA) 과정이 받아온 화려한 평가 들이다. 1998년 개설된 KDI MBA는 학술논문 다운로드 순위에서도 경영대학원 가운데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은 국내 최초로 100% 영어강의를 도입해 외국인들에게 인지도가 더 높다. 한국의 개발 신화를 배우려는 제3세계 공무원들의 유학 러시로 인해 재계에서는 "제3세계 인맥을 만들기 위해선 KDI에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처럼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MBA 과정에 대해 폐지 결정이 내려졌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는 지난달 말 "KDI의 설립 취지에 맞춰 정책학 과정(MPP)을 확대 개편하는 대신 일반 경영대학원 방식의 경영학 전공은 없애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 KDI MBA과정은 신입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 국내 최고 MBA스쿨 왜 없어지나?
이 과정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한국형 MBA의 원조로 불리던 MBA 과정에 대해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단박에 폐지 결정이 내려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200여명의 재학생들과 1200여명의 졸업생들은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법적 행정적 대응에 나서는 한편 국무총리실과 KDI에 집단 탄원서를 제출했다. "문제가 생기면 없애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여기서 거론된 '문제'란 지난 4월 감사원 감사 결과로 공개된 KDI의 도덕적 해이를 말한다. 당시 대학원장을 역임한 모 교수는 직속 상급자인 KDI 원장의 승인 없이 매년 자신의 연봉과 성과급을 크게 올려 받았다. 또 이 대학원 교수 15명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평일 골프나 사적인 해외여행으로 총 186일을 무단결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들은 이에 대해 "일부 교수들의 일탈 행위를 부풀려 폐지로 되갚는 것은 10년 이상 지속된 정책과정의 일관성을 포기한 행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MBA과정 폐지에 대한 KDI의 입장은 명확한 편이다.
MBA과정은 민간 분야(private sector)에 넘기고 KDI는 원래 취지에 맞게 정책학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것. 설광원 KDI 부원장은 "감사 결과와 무관하게 KDI가 설립취지를 찾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면서 "학교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한국의 개발경험을 제3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정책학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할 예정이기 때문에 논란이 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공식입장과 달리 일부 KDI 교수들은 이번 결정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MBA과정을 두는 것이 KDI의 설립목적과 크게 배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공공분야와 비즈니스 영역이 통합되는 것이 추세인데다 MBA 과정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목소리는 정부산하기관이라는 KDI의 성격상 외부로 드러나지는 못하고 있다.
b>● 학생, 교수, 학계 모두 아쉬워 해
2008년 야간 MBA을 다닌 김강욱 동부화재 차장(41)은 "흔히들 MBA과정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교수들의 지식을 전수받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최고의 경험을 지닌 타 분야 전문가와의 네트워킹이 더 값진 것인데 이를 주도할 구심점이 사라졌다"며 이번 결정을 안타까워했다.
외국인 학생들의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정책학 과정을 마친 이라크인 이프티함 뮤샤브 씨(29)는 "정책학과 MBA가 동떨어진 분야가 아닌데 MBA과정을 없애는 것은 넌센스"라며 "한국 유학을 희망하는 고국의 후배들에게 추천할만한 좋은 학교가 사라지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은 전체 학생 중 외국인 비율이 30%를 넘는다. 외국인 학생은 주로 동남아시아와 동유럽권 공무원들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비를 자랑해온 KDI의 MBA과정이 사라질 경우 제3세계 유학생들의 급감까지 우려된다.
이번 폐지 결정이 급작스레 내려짐에 따라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도 줄을 잇고 있다. 현재 치열한 MBA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사립대학들의 강력한 견제가 결정타가 됐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 KDI의 MBA과정은 그간 우수한 직장인들이 선망하는 과정으로 각광을 받았다. 학비가 일반 MBA 과정의 절반 수준인데다 장학금도 풍부하고 공무원들과의 활발한 네트워킹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KDI는 국내 MBA의 시장 질서를 깨뜨리는 원흉으로 지목 받았다. 이 같은 사정으로 인해 교수들의 골프 사건이 KDI가 MBA를 갑자기 포기하게 된 이유의 전부일 리가 없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KDI의 한 교수는 "10년 이상 최고의 학교를 만들려고 달려온 교수와 학생들의 노력을 무참히 짓밟는 무책임한 의사결정에 분노한다"며 "정부가 더 좋은 학교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폐지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이해당사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