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동화책 읽어주며 태교… 꿈만 같아요”
한국디지털대 우수 수강생 3人
《한국디지털대(한디대)가 2007년부터 시작한‘다문화가정 e-배움캠페인’ 수강생이 4만 명을 돌파했다. 인터넷 화상강의를 통해 결혼이주민여성과 그 가족들에게 한국과 모국의 언어와 문화를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입소문을 통해 다문화가정에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한디대로부터 ‘다문화가정 e-배움캠페인’우수 수강생 3명을 추천받아 그들의 배움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루 2시간씩 꼬박꼬박 한글 공부
재래시장서 물건값 깎는 재미 쏠쏠”▼
■ ‘필리핀 출신’ 부산 로리타 권 씨
“재래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는 재미가 쏠쏠해요. 인정이 많아서 좋아요.”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사는 로리타 권 씨(35)는 2007년 4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1999년 먼저 부산으로 시집 온 필리핀 동네친구의 소개로 2006년 남편 권태영 씨(39)를 만났다. 주로 화상 채팅을 했고 친구가 중간에서 동시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연애를 했다. 4개월간의 열애 끝에 부산에 시집을 왔지만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다. 결혼 당시에는 ‘예’ ‘아니요’ ‘안녕하세요’ 등 간단한 말만 가능했다. 결혼한 뒤 곧바로 딸 정아(3)를 임신해 한국말을 배울 시간도 많지 않아 더욱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동네 시장에서 2000원짜리 과일을 1000원으로 깎는 등 상인들과 가격 흥정을 할 만큼 한국말이 늘었다. 2007년 8월 부산시여성회관에서 한국디지털대의 ‘다문화가정 e-배움 캠페인’을 소개받은 게 계기가 됐다. 그때까지 부부는 부산 지역이나 인터넷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어 교육과정이 있는 줄도 몰랐다. 로리타 씨는 곧바로 남편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로 하루 2시간씩 한국어 공부에 매달렸다. 온라인 공부 시간이 끝나면 일주일에 두 번씩 부산시여성회관에서 중국, 일본, 베트남 새댁들과 함께 복습도 했다. 로리타 씨는 “결혼 직후에는 남편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지만 한국디지털대의 온라인 교육 덕분에 대화도 늘었고 한국 생활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요즘 식탁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음식이 올라온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기본이고 오징어순대, 조개탕, 김밥, 잡채 등이 입맛을 자극한다. 한글로 된 요리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로리타 씨가 새로운 음식을 선보이고 있는 것. 그녀는 “늘어난 한국어 실력 덕분에 다음 달부터는 인근 학원이나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에서 영어강사로 일할 계획”이라며 웃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남편 소개로 온라인 강좌 접해
6개월 과정 마치고 다시 들었죠”▼
■ ‘베트남 출신’ 옥천 쩐티미수엔 씨
“매일 저녁 배 속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1년 전 이맘때만 해도 한글로 된 책을 읽는 일은 꿈도 못 꿨어요.”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 사는 베트남 출신 쩐티미수엔 씨(21). 지난해 6월 한국인 남편 박성국 씨(43·한국음식업중앙회 옥천군지부)와 결혼한 그녀는 지금 임신 6개월의 ‘예비 엄마’다.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간단한 인사말을 하는 수준이었다. 언니, 오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5남4녀의 막내딸이었던 어린 새댁에게 한국생활은 말과 문화 등 모든 게 낯설었다.
국제결혼업체를 운영하는 친구의 소개로 아내를 만난 남편 박 씨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내와는 손짓, 몸짓으로 눈치껏 의사소통을 하는 게 전부였다. 옥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한국어 교실에 등록하고 방문 도우미 선생님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아내의 ‘새로운 언어’ 습득은 쉽지 않았다.
어린 아내와의 세대차이와 문화차이를 줄이기 위해 베트남 출신과 결혼한 ‘다문화가정 선배’들이 개설한 인터넷 카페 글을 읽던 박 씨에게 한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한국디지털대의 ‘다문화가정 e-배움 캠페인’이 그것. 박 씨는 곧바로 등록한 뒤 아내에게 프로그램 접속 방법을 가르쳤다. 이후 남편이 출근한 뒤 미수엔 씨의 일과는 컴퓨터 켜는 것으로 시작했다. e-배움 과정은 한글 듣기와 말하기, 쓰기 등을 알기 쉽게 베트남어로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돼 어렵지 않았다.
미수엔 씨는 한국어 입문, 한국어 1∼5과정, 한국문화 등 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쳤다. 또 자신의 이름으로 또 한 번 등록해 과정을 다시 이수했다. 미수엔 씨는 “다문화센터 과정과 방문 선생님도 한국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됐지만 한디대의 e-배움 과정이 가장 큰 도우미였다”고 자랑했다.
옥천=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고향의 어머니 그리울 때마다
한국어로 詩를 써 향수 달래죠”▼
■ ‘우즈베크 출신’ 포항 문 굴노자 씨
“어디서든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친정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마음에 시(詩)를 쓰곤 한답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경북 포항시에 사는 문굴노자 씨(22·포항시 남구 연일읍 유강리). 2007년 10월 결혼하기 전 우즈베크의 한 가정법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던 그는 고향에서 시집을 두 권이나 펴낸 어엿한 시인이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안됐는데도 한국어로 시를 쓸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2007년 말부터 한국디지털대의 다문화 온라인 교육과정을 거의 날마다 들으면서 한국어와 문화를 익히고 포항여성문화회관의 다문화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이다.
그는 시부모를 비롯해 남편 전처의 자녀, 11개월 된 막내딸 등 일곱 식구를 보듬는 섬세하고 고운 마음씨 덕분에 가족의 사랑이 넘친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파이넥스공장에 근무하는 남편 문민석 씨(39)는 “고향을 떠나 포항까지 와준 데 대해 결혼 이후 하루도 고마운 마음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굴노자 씨의 고향은 우즈베크의 수도 타슈겐트에서 서남쪽으로 120km가량 떨어진 굴리스탄. 이곳에 친정어머니(40)와 남동생(16)이 있다. 남편 문 씨는 “결혼할 때 처음 간 뒤로는 아직 찾아뵙지 못했다”며 “매달 한 번씩 전화로나마 꼭 집사람과 함께 문안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굴노자 씨는 올해 초 포항에서 열린 한 여성행사에서 ‘그리운 어머니’라는 시를 써 발표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보고 싶을 때 달려가지 못하는 심정을 시에 담은 내용이다. 딸 지원이를 돌보느라 낮에는 시간이 없지만 자투리 시간을 쪼개서라도 한국어 공부에 더 욕심을 내는 이유는 빨리 한국어로 쓴 시집을 펴내 친정어머니께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생각을 예쁘게 표현하는 시를 쓰는 것이 무척 좋다고 했다.
포항=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