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맥주 견문록/이기중 지음/336쪽·1만5000원·즐거운상상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맥주가 있을까. 덴마크 코펜하겐의 칼스버그 맥주박물관에 전시된 맥주만 해도 1700여 종에 이른다. 맥주는 1만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유래했지만 현대 맥주의 본고장은 유럽이다. 맥주 마니아이자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유럽의 모든 맥주를 맛보고 싶은 마음에 2008년 여름 50일간의 맥주 순례를 떠났다. 이 책은 그 여행의 기록이자 저자가 정리한 맥주의 백과사전이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은 ‘맥주의 나라’와 ‘와인의 나라’로 구분된다. 영국 아일랜드 벨기에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 맥주의 나라이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쪽 지방은 와인의 나라다. 저자는 고고한 와인보다 맥주를 좋아하는 이유를 “맥주가 사람 사이의 오작교 역할을 하는 대중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먼저 소개한 영국은 대중적인 맥줏집 펍으로 유명하다. 펍은 맥주가 소통의 도구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공간. 왁자지껄한 펍에선 사람 냄새가 난다. 영국 펍은 에일 맥주를 판다. 에일 맥주는 라거 맥주와 달리 따뜻한 곳에서 단기간에 숙성시킨다. 과일 향과 깊은 맛, 그리고 진한 색깔이 특징이다.
아일랜드에서 저자는 스타우트 맥주를 즐겼다. 스타우트는 1700년대에 등장한 것으로 애초에는 짐꾼들이 즐기던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다.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스타우트 맥주인 기네스는 매일 150개국에서 1000만 잔 이상이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저자는 독일을 “맥주가 넘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독일 맥주는 다른 나라의 맥주보다 순수한 본연의 맛을 자랑한다. 저자는 뮌헨에선 슈바인학세(돼지족발)와 피클, 그리고 바이젠 맥주로 ‘독일식 삼합(三合)’을 즐겼고, 밤베르크에서는 훈제 맛이 나는 라우흐비어를 마셨다.
벨기에는 맥주 박람회장 같은 곳이었다. 맥주 종류로 따지자면 벨기에가 최고다. 특히 수도원에서 만드는 오르발은 후추 맛과 상쾌한 홉의 향이 일품이다. 6개월이 지나면 신맛과 레몬맛이 나고 1년이 지나면 크림 같은 거품과 함께 맛이 드라이해진다. 저자는 오르발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저자는 전화 인터뷰에서 인류학자답게 한국 맥주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아시아 맥주 중에서도 한국 맥주는 하위권이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 맥주가 싱겁고 맛이 없다고 말한다. 병 디자인도 천편일률적이고 맥주 자체를 즐기는 문화도 없다. 맛이 없다보니 폭탄주로 만들어 먹는 문화만 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