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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이 대통령 ‘8·15 처방전’ 공감대 형성 중요하다

입력 | 2009-08-17 03:02:00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지역주의를 해소하고 생산적인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을 제안했다. 빈번한 선거로 국력이 소모되고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심화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선거 횟수 줄이기도 제의했다. 이 대통령이 ‘근원적 처방’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2개월 만에 내놓은 방안이다. 대통령 취임 후 1년 반이 되는 때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는 각오로 밝힌 총체적인 국정 과제이지만 국민 설득과 정치권의 합의를 필요로 하는 난제들이다.

지역주의 완화와 정치 선진화, 國運 걸린 과제

선거제도 개편은 한 선거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대신 2∼5명 이상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거나 과거에 논의됐던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惜敗率) 제도의 도입이 검토될 수 있다. 호남에서도 한나라당 의원이, 영남에서도 민주당 의원이 배출되도록 함으로써 특정 정당이 한 지역 의석을 싹쓸이하는 폐단을 시정할 필요성은 있다. 제도 개편이 이루어진다면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의 출현이 가능해져 지역주의와 이에 근거한 정치적 갈등이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선거제도의 변경은 모든 주요 정파가 의견의 일치를 보이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다. 지난날 대선, 총선의 지역별 득표율을 감안할 때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배출될 가능성은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이 나올 가능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전제로 대연정을 제의했을 때도 한나라당은 거부했다. 하지만 현행 소선거구제가 1위만 살아남는 선거로 지역구민의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특정 정당의 지역 독식으로 정치적 정서적 지역주의를 심화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대승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이 “여당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꼭 이뤄내야 할 일”이라고 한 것도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행정구역 개편은 이미 오래전부터 거론된 사안이다. 17대 국회 때는 여야 합의로 구체적 개편안까지 확정했지만 시도지사들이 반발하고 2006년 지방선거와 맞물리면서 흐지부지됐다. 18대 국회 들어서도 올 3월 지방행정체계개편특위가 구성돼 위원장인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이 의원 62명의 서명을 받아 전국 230개 시군구를 2∼5개씩 묶어 60∼70개 광역자치단체로 개편하자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야당도 비교적 긍정적인 편이라 정치권이 뜻만 모은다면 지금이라도 추진이 가능하다.

거의 한 세기 전 일제가 만든 행정구역을 시대 변화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총론에 대한 공감대는 높은 편이다. 행정구역 개편은 지방행정의 낭비와 비효율을 줄이는 방안도 된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주민들의 소지역주의에다 자치단체장과 지역 공무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현실적으로 내년 지방선거부터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한꺼번에 시도 폐지나 시군구 통합을 하기가 쉽지 않다면 2014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국민적 동의 아래 순차적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선거 횟수의 감축은 연 2회인 현행 재·보궐선거를 1회로 줄이는 정도라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시기를 맞추자면 개헌이 필수적이다. 난제이지만 지나치게 잦은 선거로 인한 국력 낭비와 국민의 피로감을 감안한다면 포기하기도 어려운 과제다. 개헌 문제를 공론화한다면 권력구조 개편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논의가 불가피하다. 22년 전인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인 현행 헌법 체계를 시대의 변화와 국가적 상황에 맞게 고쳐야 하는 일인 만큼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가는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 국운이 걸린 문제다.

“중도실용, 좌와 우의 기계적 평균 아니다”

위민(爲民)정치의 구현과 선진화의 방책으로 ‘중도실용’ 노선이 제시됐다. 이 대통령은 중도가 ‘좌와 우의 어설픈 절충이나 기계적 평균이 아니라 헌법정신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존중하고 더욱 발전시킨다는 전제 아래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잡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 중도론에 대한 일부의 오해를 불식시켰다. 실용은 “중도를 실현하는 방법론으로 국민의 삶과 괴리된 관념과 구호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사회의 통합과 선진화를 위해 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해 성과를 나타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 대통령의 8·15 제의가 의미 있는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각론 액션플랜으로 국민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치권과 사회 각계는 냉철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되 국가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병리현상들을 치유하기 위해 허심탄회하고 생산적인 논의에 나서야 한다. 정쟁(政爭) 때문에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날려 버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