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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수도생활 체험’

입력 | 2009-08-17 03:02:00

경북 칠곡의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수도생활 체험학교’에 참가한 사람들이 14일 오후 입교식을 마치고 잔디밭에 모였다. 서로의 등을 맞대는 의식을 통해 참가자들은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조금씩 키워 나갔다.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본보 민병선 기자. 사진 제공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하늘 안 보이는 곳선 입 열지 말라”
식사 중엔 수저 부딪치는 소리만…

걷기 불편한 수도복 입으니 행동 조심하고 마음 차분해져
논-목공소 등 노동체험 빼고는 온종일 기도하는 시간의 연속

한국의 대표적인 천주교 수도자 도량인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현재 신부와 수사 70명이 지내고 있다.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고즈넉한 이곳의 육중한 문이 활짝 열렸다.

14일 오후 2시, 전국에서 온 90여 명이 수도원 강당에 하나둘 모였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2박 3일간 열린 ‘수도 생활 체험학교’의 참가자들. 고교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30, 40대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1박 2일 동안 기자도 이 체험학교에 다녀왔다.

입회식과 서원식을 마치고 수도자들이 입는 것과 똑같은 수도복을 받았다. 고교생들은 영화에서나 보던 발목까지 내려오는 하얀 원피스 형태에 뾰족한 모자가 달린 수도복이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를 본 박재찬 신부(38)가 이렇게 말했다.

“이 옷은 걷기에 불편합니다. 불편하기 때문에 오히려 행동을 조심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하느님 앞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죠.”

곧이어 마음을 여는 의식이 이어졌다. 고교생 최준엽 군(17)과 눈을 감고 등을 맞댔다. 잠시 후 서로 상대방의 맨발을 손으로 잡았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왔다.

오후 3시 수도자들이 일하는 농장, 목공소, 금속공예실 등을 견학했다. 이장규 신부(30)는 “금속공예실의 수사들은 수작업으로 20cm 크기의 성작(聖爵·포도주를 담는 잔) 하나를 만들기 위해 10명이 2주간 땀을 흘린다”며 “공예실이 힘들다보니 수사들은 조금 여유가 있는 농장 일을 선호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수도원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다는 원칙에 따라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출판사, 인쇄소 등도 운영하고 있다.

견학을 마치고 수도원의 심장인 성당으로 향했다. 오후 6시가 되자 휠체어를 탄 최고령 이미카엘 수사(94)부터 19세 수사까지 수도자들이 모두 모였다.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울리고 수도자들과 함께 성가를 불렀다.

오후 7시 식사시간. 밥을 먹는 동안 말을 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하늘이 안 보이는 곳에서는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때문이다. 가끔 젓가락과 숟가락 부딪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식사 후 다시 복식호흡을 하며 30여 분간 기도가 이어졌다. 이후 고해성사를 마치고 오후 1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이틀째인 15일, 수도원의 아침은 일찍 찾아왔다. 기차 소리가 아침의 정적을 깼다. 오전 5시 반에 서둘러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마친 뒤 기도하러 나섰다. 식사와 노동 외에 수도원 생활은 기도의 연속이었다.

오후가 되자 논, 과수원, 목공소에서 노동체험이 시작됐다. 과수원에는 성경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와 자두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밭에는 당근과 양파가 자라고 있었다. 노동체험 도중 직장인 이주영 씨(32·전북 군산)는 “좋은 차, 좋은 옷에만 신경 쓰며 살았는데 마음에도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가를 내 참가했다”며 “수도복을 입으니 내 안의 모든 욕심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직접 자신의 묵주를 만들었다.

노동을 마치고 모든 참가자가 기도를 시작할 때, 기자는 이들에 앞서 1박 2일간의 체험을 마치고 수도원을 나섰다. 2002년 시작한 체험학교는 매년 여름과 겨울에 네 차례 열린다. 054-970-2000

칠곡=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