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대신 가장 노릇 20대
“큰 혜택 보는 줄 알지만 특별채용은 그림의 떡”
“남들이 부러워하는 국가유공자 자녀라는 이유로 ‘국가귀공자’라는 손가락질도 받았고, 학교에서도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차라리 그런 혜택을 안 받고 아버지께서 건강하셨으면 더 좋겠습니다.”
경기도에 사는 A 씨(22)는 보훈대상자 지원을 위해 만든 고용의무제를 국가기관이 외면하고 있다는 내용의 본보 기사를 읽고 기자에게 16일 이렇게 말했다.
힘센 국가기관일수록 보훈대상자 채용 외면
그의 아버지는 군복무 중 작전을 수행하다가 총이 격발돼 복부 부위를 다쳐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이후 아버지는 작은 식당 등을 운영했지만 빚을 져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고, 빚 때문에 어머니와도 법적으로 이혼해야 했다. 군대 후유증과 사업 실패 등으로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에 빠져 최근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까지 이르렀다.
A 씨 가족이 국가에서 받는 돈은 월 70만∼100만 원이지만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대부금을 갚고 나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30만∼40만 원뿐. 실질적인 가장인 그는 기능직 공무원직에 지원했지만 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관련법에 따르면 기능직의 정원이 5명 이상인 국가기관은 기능직 공무원 가운데 보훈대상자나 그 가족을 10% 이상 뽑아야 하지만 이를 잘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
그는 “막상 취업할 때가 돼서 거주지 관할 보훈청에 기능직 특별채용 신청을 했는데 1년 가까이 기다려도 아무 답이 없었다. 내가 아쉬운 처지이니까 자꾸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했지만 기존에 있던 사람이 나가야 자리가 생긴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올 5월 보훈청에서 교육청 기능직에 추천해줬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다”며 “보훈청 쪽에도 여러 차례 나의 어려운 사정을 하소연했지만 ‘우리도 권력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알선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해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년제 기능대학을 올해 2월 졸업했지만 현재 학력을 높이기 위해 사이버대학에 등록했다. 그는 올해 3월부터 시청에서 공공근로를 하며 주경야독(晝耕夜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이달 말이면 계약기간이 끝나 당장 생계가 막막한 실정이다.
A 씨는 “사람들은 국가유공자들이 큰 혜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가유공자에 대한 가산점도 10점에서 5점으로 낮아지는 등 국가유공자 혜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서 “솔직히 이제는 아버지가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고 원망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며 울먹였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