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잡지 기자들이 말하는 드라마 ‘스타일’
100만 원이 넘는 명품 구두를 망설임 없이 산다. 후배가 같은 신발을 신은 것을 보자 그 자리에서 벗어던지고 맨발로 도도하게 걸어간다. 어깨선이 드러나는 의상을 즐겨 입는다. "넌 이미 하자야" 등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패션 업계를 배경으로 한 SBS 주말드라마 '스타일'에서 패션잡지 '스타일'의 박기자(김혜수) 차장의 모습이다. 그가 편집장으로 승진한 16일 '스타일'은 19.6%의 시청률을 올렸다.
'스타일'에서는 박 차장의 패션과 카리스마, 기사 경쟁, 취재원과 기자들의 애정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재미를 높인다. 패션잡지 기자들의 생활은 어떤지 '보그코리아'의 신광호(남) 패션디렉터와 'W코리아'의 최유경(여) 패션디렉터로부터 들었다.
-드라마에서 박기자의 명품 패션이 시선을 끈다. 평소 패션잡지 기자들의 의상은 어떤가.
△최="패션지 기자들이 모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잡지사의 소품실 같은 옷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명품을 입기는 하지만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신고 샤넬 향수를 뿌리고 입생 로랑 옷을 입는 등 명품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도배한 기자는 없다. 그럴 정도로 연봉이 높지도 않다. 멋진 화보를 찍으려면 암벽도 올라가야 하는데 극중 김혜수 씨처럼 입고 다니면 너무 불편할 것 같다.(웃음)"
-극중 박 기자는 회의 때 후배들의 기사를 가차없이 찢어버리는가 하면 독설도 퍼붓는다.
△신="내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10년 전에나 가능했을 일이다. 외근이 잦아 한 달에 한 번 기획회의 때 팀원 전체가 모인다. 그만큼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회의가 진행된다."
-드라마에 '엣지(edge)있게~'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패션업계에서 자주 쓰는 말인가.
△최="'엣지있다'는 평범한 듯 하면서도 비범하고 감(感)이 좋다는 뜻이다. 잡지사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W코리아는 이 단어를 잘 안 쓴다. 서로 대화할 때도 세련되고 멋있다는 의미로 '쉬크(chic)하다'는 표현을 종종 쓰지만 '엣지있다'는 잘 안 쓴다."
-기사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신="지금 핫 이슈가 된 연예인이나 해외 모델 단독 인터뷰는 굉장히 중요하다. 지면을 많이 주거나, 잡지 표지를 제안하거나, 해외 촬영을 떠나는 등 다양한 조건을 내건다. 해외 유명 사진작가가 사진 찍는 것을 조건으로 섭외하기도 한다."
-16일 방영한 '스타일' 6회에는 잡지 200호 발간 파티가 클럽에서 열렸고 연예인과 참가자들이 레드카펫을 밟으며 파티장에 들어왔다. 실제 패션잡지사의 파티 모습 어떤가.
△최="패션잡지사에서는 창간 파티, 자선 파티 등 여러 파티가 열린다. 정재계 인사, 해외 브랜드 지사장, 연예인 등을 초청하며 파티 장소로는 클럽이나 호텔이 많이 쓰인다. 드라마처럼 실제 레드카펫이 깔리고 사진 찍을 수 있는 포토라인이 설치되지만 드라마 속 파티가 실제보다 화려하게 묘사된 것 같다. 자선파티에서 기금을 모으기 위해 파티장에서 미술품 경매를 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박기자는 마감을 앞두고 "먹는 시간 자는 시간 싸는 시간 반으로 줄여. 연애 금지 채팅 금지"를 선언한다. 실제 마감 때 풍경은 어떠한가.
△신="보그코리아는 20일에 다음달 잡지가 발간되며 매달 5일~15일이 마감 기간이다. 마감 초반에는 오후 9시 정도에 퇴근하고 막판에는 12시 정도에 퇴근한다. 밥은 보통 회사 내부로 배달시켜서 먹는다. 드라마에서는 어시스턴트가 '커피 심부름'을 하던데 우리는 '순대 심부름'을 시킨다(웃음). 마감 때가 되면 다들 편하게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알아서 조용히 하는 분위기다.
-극중에 발행인이 마감 4일 전에 8페이지 분량의 주요 기사를 갑자기 빼고 다른 기사로 채우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발행인과 인터뷰이(interviewee)의 복잡한 가족관계가 원인이었는데…실제 이런 상황이 가능한가.
△최="나는 11년차 잡지기자인데 이렇게 발행인의 압력에 의해서 기사가 갑자기 빠지는 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다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4일 전에 기사가 바뀌는 상황은 가능성이 있다. 예전에 취재했던 기사에서 사진에 찍힌 연예인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그 부분만 사진을 뺀 적은 있다."
-드라마에서 유명 요리사인 서우진(류시원)이 패션잡지를 '광고만 가득한 잡지'라고 비하하는 장면이 나왔다.
△신="패션잡지사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나도 '왜 이렇게 광고가 많지' 생각했었다. 지금도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광고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잡지 인지도가 높다는 뜻이다. 일하면서 영향력이 큰 잡지사에서 패션 관련 이슈를 만들어나간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