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시공간… 무의식 속으로
《사뭇 다르다. 고즈넉한 경희궁 앞뜰에 자리한 철제 구조물의 안과 밖은 완전 딴 세계다. SF영화에서 튀어나올 법한 흰색 구조물은 차가운 미래의 에너지를 뿜어내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원시시대의 동굴 같은 느낌의 감성적 풍경과 마주서게 된다. 벽면에는 커다란 눈과 뼈가 그려져 있고 바닥에 놓인 고인돌과 감자 모양의 설치물 안에선 기이한 내용의 점토와 목탄 애니메이션이 펼쳐진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복합문화공간으로 설계한 가변형 건축물 ‘프라다 트랜스포머’에서 9월 13일까지 열리는 스웨덴 출신 나탈리에 유르베리 씨(31)의 ‘턴 인투 미(Turn into Me)’전 현장이다.》
■ 트랜스포머 ‘턴 인투 미’전
가변형 건물 속의 기이한 영상
밝음-어둠 교차하는 세계 만들어
■ ‘어번 앤드 디스어번’전
전면 개보수 앞둔 오래된 여관
첨단 미디어 만나 미묘한 조화
15일 개막한 이 전시는 패션브랜드 프라다가 3월부터 진행해 온 프로젝트 중 패션쇼와 영화제에 이은 세 번째 프로그램. 프로젝트가 바뀔 때마다 육면체, 원, 직사각형, 십자형이 결합된 180t의 구조물이 회전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서울 시민을 위해 선보인 프로젝트여서 모든 행사를 마치면 구조물은 분해 및 철거된다는 것이 프라다 측의 설명이다. 지난해 밀라노에서 열린 전시를 트랜스포머 공간에 맞춰 새롭게 구성한 전시의 관람은 무료지만 홈페이지(www.pradatransformer.co.kr)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트랜스포머처럼 세련된 공간은 아니지만 건물과 예술이 어우러지며 상생효과를 빚는 또 하나의 전시를 서울 도심에서 만났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브레인팩토리 부근 옛 보안여관 2층에서 20일까지 열리는 ‘어번 앤드 디스어번(Urban & Disurban)’전. 보수를 눈앞에 둔 낡은 건물은 흙벽과 골조만 남아 폐허처럼 보인다. 세월의 묵은 흔적들이 각인된 공간에 김소희 이승준 이진준 윤주경 씨의 설치와 비디오, 사진작품이 선보였다. 1940년대 건물에 자리한 작품은 보는 이의 시공간을 뒤집으며 새로운 세계의 체험으로 이끌어준다.
○ 내면으로 들어가다
전시를 통해 트랜스포머의 공간은 무의식의 동굴로 변신했다. 애니메이션, 설치, 드로잉이 공간과 몸을 섞으며 전시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것.
‘턴 인투 미’전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젊은 작가에게 주는 은사자상을 받은 유르베리 씨의 만만치 않은 역량을 가늠하게 한다. 대사 없이 배경음악(한스 버그)만 울리는 어둠 속 공간에 자리한 고인돌과 커다란 감자. 그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영상작업은 피가 튀는 섬뜩한 이미지에 창조와 파괴가 공존하는 내용으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인체가 부패한 뒤 남은 뼈에 동물들이 들어가 괴물이 탄생하거나 해마를 죽인 뒤 그 몸속으로 들어가는 사냥꾼 등. 성과 죽음, 육체적 폭력을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 등을 담은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무의식 세계의 심연을 파고든다.
작품을 푸는 키워드는 ‘안으로 들어가다’. 전시를 위해 내한한 유르베리 씨는 “작업을 통해 내 무의식 속으로, 여러분 스스로의 내면으로 초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려움이 작업 테마 중 하나’라고 고백하는 작가는 “죽음이 두렵게 느껴진다면 어떻게 죽을지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두려움과 맞설 것인가’를 다룬 그의 작업은 꿈과 악몽,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태초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 공간의 느낌에 빠져들다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도 안 됩니다.’ 이런 경고문이 그대로 남아있는 구식 여관에 현대적 미디어를 활용한 첨단 작업이 자리 잡았다. 움직이는 모조 남근이 등장하는 비디오와 삭막한 아파트를 보여주는 모니터, 우주선을 연상시키듯 거울과 유리의 반사를 활용한 설치작업 등이 낡은 건물과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전시를 기획한 김숙경 씨는 “여관 내부의 건축 미학적 상황이 작품의 실재를 극화함과 동시에 관찰자의 심리에 강한 긴장과 탐구 의지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평범한 전시장과 다른, 또한 덧없이 사라질 공간을 활용한 두 전시. 그 속에서 작품과 공간은 긴 대화를 나누며 관람객을 ‘공간의 느낌’ 속으로 빠져들게 안내한다. 그 느낌은 궁극적으로 우리 마음에 자리한 지하실로 가는 길과 이어져 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