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때문에 어려움 겪는 서민들에게
정부가 주거비 쿠폰 제공하는 제도
[?]내년부터 주택바우처가 시범 실시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바우처제도는 무엇이고, 주택바우처는 왜 실시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용처-금액 제한할 수 있어 현금 지원보다 효율적으로 관리 가능
형평성 문제-암거래 등 부작용 우려도
바우처(Voucher)의 사전적 의미는 증서 또는 상품권입니다. 원래는 마케팅 용어인데 특정 상품의 판매를 촉진하고 고객의 충성도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이러한 바우처가 사회보장제도에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바우처를 사용할 경우 복지정책의 목표를 비교적 잘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저소득층 등 특정 계층에 제공하는 복지서비스에는 교육, 주택, 의료 등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시장에 정상적으로 진입해 비용을 치르고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저소득층에 정부가 지원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정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로 직접 나서는 경우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드는 금액을 지원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서비스를 수요만큼 제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렴한 금액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짓거나, 보건소를 운영하거나, 공립학교를 운영하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필요한 만큼의 수요를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정부는 직접 비용을 지원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직접 현금으로 줄 경우 돈을 받은 사람들이 정부가 의도한 방향대로 그 돈을 사용할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비로 쓰라고 준 돈을 술 사먹는 데 쓰거나 의료비로 쓰라고 준 돈을 은행에 넣어놓는다고 해서 정부가 일일이 제재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를 바우처로 지급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학교에만 낼 수 있는 교육 바우처, 의료기관에만 낼 수 있는 의료 바우처를 나눠줌으로써 정부는 사용처와 금액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내년부터 시범 실시를 준비하고 있는 주택바우처는 주거비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쿠폰입니다. 자기 집을 마련할 능력이 없어 매달 일정 금액을 내고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임차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쿠폰을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매달 30만 원씩 월세를 내는 사람이 10만 원의 주택 바우처를 정부로부터 받는다면 이 사람은 집주인에게 이 쿠폰과 함께 자기 돈 20만 원만 내면 되는 것입니다. 집주인은 이 사람으로부터 받는 바우처를 담당 기관에 가지고 가서 다시 10만 원의 현금으로 받아올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우처제도는 많지 않은 소득으로 과다한 임차료를 내야 해서 생활비가 부족해진 저소득층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정책이지만 실제 시행을 하는 데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습니다.
우선 어떤 기준으로 누구에게 얼마만큼 지원할지 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나보다 돈이 많은데 지원도 더 많이 받는다’는 식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또 그동안 임차료가 저렴한 집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하던 사람들이 이런 노력을 게을리할 수도 있습니다. 집주인은 어차피 정부가 주는 돈이라고 생각하며 임대료를 올릴 가능성 등의 각종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거죠. 이 경우 정부의 재정 부담만 커집니다. 또 이 쿠폰을 사람들끼리 불법적으로 사고팔기까지 한다면 시장질서도 어지러워질 수 있습니다. 정부가 내년에 일단 시범사업부터 실시하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 시행을 통해 주택바우처제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찾아 보완 개선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주택바우처제도는 이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직접 공공주택을 짓는 것도 좋지만 시장질서를 존중하면서 시장참여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줄 수 있는 주택바우처제도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도 대부분 수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제도를 수정 보완해 왔습니다. 국내총생산(GDP)의 1%를 차지할 만큼 재정 규모가 큰 주거복지제도이기 때문이죠. 내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시범 실시될 주택바우처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아 오르는 전·월세금 때문에 서러운 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